'환율전쟁'에도 韓정부만 느긋…각국 자금유출 방어 안간힘

英·中·日 국채매입 등 조치 나서는데 韓 "괜찮다" 일관 외환 수급 안정화 시급..."임시 금통위 열어야" 주장도

2023-09-29     이광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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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이광표 기자] 원·달러 환율 상승세가 말 그대로 '파죽지세'다. 지난주 금요일 1400원을 돌파한 원·달러 환율은 28일 장중 1440원마저 돌파하며 1500원 도달은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한 뒤로 그 충격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지난주 미국 기준금리가 한국보다 높아졌을 때 해외로 자금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는데 정부와 한국은행은 '괜찮다'며 안이하게 판단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실제 정부는 최근까지도 치솟는 환율에 대해 "역외 요인이 아닌 국내투자자의 영향"이라고 일축하는 등 위기의식이 부족한 모습으로 일관 중이다. 김성욱 기획재정부 국제경제관리관(차관보)은 28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기재부 기자실을 방문해 "지난해부터 올해 상반기 흐름을 봐도 우리 외환시장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국내 주체이지, 밖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앞서 기재부와 한은은 환율이 1400원을 돌파한 다음날인 지난 23일 "국민연금과의 원-달러 스왑 거래를 하기로 했다"며 "외환시장의 수급 안정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외환당국의 외환수급 안정화 조치는 외환시장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원·달러 환율이 저지선으로 여겨졌던 1400원을 돌파하면 1500원까지 줄달음칠 것이라는 외환전문가들의 예상대로 이번주 월요일 장이 열리자마자 환율은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지난달만해도 국내 외환시장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설마 1400 원을 넘을 수 있겠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정부도 4000억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고와 한국 경제의 튼튼한 기초체력을 자랑하며 환율방어에 자신감을 밝혔다. 하지만 이달 들어 환율이 급등하면서 저항선은 1400원에서 1440원선까지 치솟았고 기업들은 이미 1500원 돌파를 받아들이고 외환수급을 준비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넘어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고점이었던 1597원도 안전하지 않다는 경고도 나온다. 시장은 환율이 2000원에 육박했던 1997년 말 외환위기 당시도 염두에 두고 있다. 문제는 주요국들이 달러화 강세 속 자국 통화 방어를 위해 적극적인 조치에 나선 반면 우리나라 정부와 당국은 안이한 대처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영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은 파운드화 급락에 대처하기 위해 최대 650억파운드(약 101조원) 규모의 긴급 국채 매입을 시작했다. 앞으로 13일 동안 하루에 50억파운드(약 7조8000억원)씩 장기 국채를 매입할 계획이다. 아시아 경제의 양대 축인 중국과 일본도 달러화 강세를 대응하기 위해 잇따라 긴급 조치를 실시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외환 선물환에 대해 외환위험준비금 비율을 28일부터 0%에서 20%로 상향 조정한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로 금융기관들이 위안화 선물환을 거래할 때 위험 증거금으로 거래액의 20%를 인민은행에 무이자로 예치해야 한다. 인민은행은 "외환시장 기대치를 안정시키고 거시 건전성 관리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중국이 위안화 방어에 나서는 것은 외국인 자금 유출 속도가 예상보다 너무 빠르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도 엔화 가치 하락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을 시작했다. 지난 22일 엔화 가치가 24년여 만에 최저치로 떨어지자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이 24년여 만에 '엔 매입-달러 매도' 시장 개입에 나섰다.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의 시장 개입은 3조엔 규모로 이뤄졌을 것으로 추산된다. 일각에선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과 구매력을 기준으로 한 원화의 본질 가치에 비해 올라도 너무 오르는 환율은 정부와 금융당국의 소극적인 대처도 한 몫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8월 말 현재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는 4364억 달러, 한 달 전인 7월 말 보다 21억 달러 줄어드는데 그쳤다. 외환당국이 환율 안정에 힘쓰겠다고 말을 하면서도 보유한 달러를 외환시장에 공급하며 수급 불균형을 완화하는데 적극 나서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나마 29일, 정부는 뒤늦게 15조원을 투입하며 발등의 불 끄기에 나섰다. 10조원 규모의 증권시장 안정펀드를 만들고, 5조원 어치의 국고채를 사들이겠다는 거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마저도 근본처방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환율이 뛰면서 주식과 채권값이 떨어지고 있는데 환율대책은 없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지금이라도 한은이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기준금리를 올리는 게 그나마 시장의 불안심리를 가라앉힐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다음 달 12일 예정된 금통위까진 보름이나 남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