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재해에 취약한 지하 주차장 근본적인 안전대책 서둘러 세워야

2023-09-30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박근종
[매일일보] 지난 9월 26일 오전 7시 45분경 대전 유성구에 있는 현대프리미엄아울렛 지하 주차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7명이 목숨을 잃고 1명이 중태에 빠진 참사가 벌어졌다. 제11호 태풍 ‘힌남노’로 경북 포항 지역 아파트 지하 주차장들이 침수돼 8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고가 발생한 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았다. 참사 원인이 단지 물에서 불로 바뀌었을 뿐 재해에 취약한 지하주차장의 위험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적나라하게 노정시킨 참변이 아닐 수 없다.  정확한 화재 원인은 더 조사해봐야 확인될 수 있겠지만, 현장 CCTV 영상과 목격자 진술 등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을 보면 지하 주차장 내 물류 하역장 주변에 쌓여 있던 다량의 종이상자와 의류 등이 불쏘시개 구실을 했을 개연성이 매우 커 보인다. 사실상 창고처럼 활용되는 대형 매장 지하 주차장의 안전 문제에 대한 점검과 대책이 필요한 대목이다. 불이 난 건물은 지하 2층 지상 7층 2개 동으로 연면적 12만 제곱미터가 넘는 대형 건물로 국내외 유명 브랜드 매장 280여개와 호텔, 영화관, 컨벤션센터 등이 입주해 있는 복합쇼핑몰이다. 그나마 화재가 현대프리미엄아울렛이 문을 열기 전에 발생해 주차된 차량이 거의 없었던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개점 이후 영업시간 중에 화재가 발생했다면 자칫 초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할 뿐이다. 개장한 지 불과 2년밖에 되지 않는 최신식 시설에서 그것도 한밤중이나 새벽도 아닌 시간대에서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한 점에서 또 다른 안전의 사각지대가 있음을 시사해주고 있다. 소방과 경찰 그리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8개 기관 전문가들이 현장 감식을 했다. 화재 원인과 함께 제연설비 등 소방시설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는지도 철저하게 규명해야 할 것이다. 지난 6월 실시한 정기 소방 점검 지적사항(24건)도 제대로 개선되었는지 면밀히 확인해야 한다. 불이 난 직후 지하 주차장은 연기로 가득 찼고, 새어 나온 연기가 건물 밖까지 시커멓게 뒤덮었다. 현재까지 밝혀진 것은 주차된 1톤 화물차 근처에서 불꽃이 치솟은 뒤 20∼30초 만에 연기가 번졌다. 직원들이 대피할 틈도 없이 유독가스가 퍼진 것으로 보인다. 부검 결과 희생자들의 사인은 모두 일산화탄소 중독이었다. 환기가 잘 이뤄지지 않는 지하공간에서의 화재가 얼마나 치명적인지 새삼 일깨워준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대형 참사에서 사회적 약자가 희생되는 일이 또다시 반복되었다는 점이다. 이날 사고로 변을 당한 사상자 8명은 모두 현대아울렛 직원이 아니었다. 희생자 중 6명은 시설관리, 쓰레기 청소, 환경미화 등을 담당한 아웃렛 하도급업체 소속 노동자였고 나머지 2명도 물품 배송과 반품 관련 업무를 하는 외부 물류택배업체 소속 노동자들이어서 죽음의 외주화가 돼버린 위험의 외주화가 또 다시 확인되고 있어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한다. 특히, 이 중 한 명은 소방당국에 화재 발생을 알린 뒤 동료들의 대피를 돕다 의식불명 상태로 소방관에게 발견됐다. 이들은 아웃렛이 문을 열기 전 남들보다 먼저 현장에 나와 일하다 변을 당했다. 2008년 1월 7일 40명이 숨진 경기 이천 냉동창고 신축 공사장 화재나 2020년 4월 29일 38명이 사망한 경기 이천 물류센터 신축공사장 화재, 2020년 7월 21일 5명이 숨진 경기 용인 SLC 물류센터 화재 등 대형 참사 희생자 대부분도 일용직 노동자였다. 이뿐만 아니라 각종 산업현장에서 일어나는 산재 희생자도 대부분 하도급 업체 노동자들이다. 이런 사고의 가장 취약한 연결고리가 하도급·용역 구조라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안전보다 인건비 절감과 효율성을 강조하는 안전 경시 풍토와 물질만능주의가 바뀌지 않고서는 이 같은 구각(舊殼)과 관행이 사라질 수 없다는 한계는 불을 보듯 너무도 자명하다. 더구나 현대 고위험사회에서의 재난 특성은 규모의 대형화 구조의 복합화, 양상의 다양화에 있고, 재난 환경은 건물의 수직고층화, 지하심층화 하는 추세에 있으며, 지하 주차장의 화재 취약성도 날로 커지고 있다. 불이 난 주차장은 3만3,000제곱미터의 면적에 차량 진출입로가 5곳이나 되는 넓은 공간이었지만 연기와 유독가스가 가득차는 데 걸린 시간은 20~30초에 불과했다. 연기가 출구 쪽으로 확산하다 보니 대피도 진입도 어려워 인명 피해를 키웠다. 현행 방화(防火性) 규제는 이런 위험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상당수 건물은 건축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지하에 제연 전용 설비 없이 제연기 겸용 공조기로 대신 설치하다 보니 유사시 제연 기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종이 등 불길이 빠르게 번지는 특수가연물을 저장·취급할 때는 품명별로 구분하여 쌓되, 쌓는 높이는 10미터 이하가 되도록 하고, 쌓는 부분의 바닥면적은 50제곱미터 이하로 하며 쌓는 부분의 바닥면적 사이는 1미터 이상이 되도록 하라는 정도에 그치고있을 뿐 방화(防火安全) 시설 등에 대한 구체적 기준은 없다. 게다가 불특정 다수의 고객이 출입이 잦은 대형 쇼핑시설 지하공간에 화재에 취약한 물품들을 방치하더라도 이를 막을 근거가 마땅치 않은 실정이다. 특히, 물류센터는 가연성 내장재를 사용하거나 건물 내에 종이와 비닐 등 가연성 포장재가 널려 있는 경우가 많아 화재가 쉽게 확산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대형 건물에서 화재로 인한 비극이 반복되는 것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불에 타기 쉽고 빠르게 번지는 특수가연물부터 철저하게 관리하도록 규정을 강화하는 등 지하공간 특성에 맞는 근본적인 안전대책을 서둘러 세워야 한다. 이제 지하 주차장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재해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극명하게 증명됐다. 그렇다면 이를 최대한 예방할 수 있는 안전대책을 강구하고 구멍이나 미비점이 없는지 더 촘촘히 살피고 미비점을 보완해야 한다. 안전한 노동환경을 만드는 것은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안전에 관한 대책은 지나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엄격하게 규정하고 적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안전 관련 법령을 강화하는 것은 당연한 순리일 터 진정으로 약자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 안전한 사회를 이룰 러면 「중대 재해 처벌법」의 처벌 기준 등을 완화하기보다는 더 강력히 시행해야 한다.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치기보다는 외양간을 미리미리 고쳐야 소를 잃어버리는 치둔(癡鈍)의 우(憂)를 범하지 않게 된다. 준비에 실패하는 것은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다. 유비무환(有備無患)과 초윤장산(礎潤張傘), 곡돌사신(曲突徙薪), 상두주무(桑土綢繆)의 의미를 각별 유념해야 한다.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