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른 월세화에 역전세난‧깡통전세 겹쳐…흔들리는 전세시장

대출이자 상승으로 월세로 몰리는 수요…가격도 상승 집값 하락으로 인한 ‘깡통전세’ 우려도 월세화 유인 “당분간 월세 선호 지속…무리한 대출보단 자기자본 늘려야”

2023-10-11     나광국 기자
사진은
[매일일보 나광국 기자]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에 사는 직장인 정씨(32·남)는 최근 전세 기간이 만료돼 보증금 일부를 월세로 내는 반전세로 전환했다. 정씨는 “집주인이 전세금을 생각보다 많이 올렸는데 대출을 받기 힘들어 상승분을 월세로 내고 있다”며 “사실 다른 월세 집도 알아봤지만 최근 월세 수요가 늘어나면서 좋은 조건의 월세의 경우 가격이 많이 올라 엄두를 낼 수 없었다”고 호소했다.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래미안 엘리니티’ 인근 A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1년 전에는 올해 전세대란을 걱정했지만, 지금은 역전세난을 우려하고 있는 분위기”며 “일부 집주인들의 경우 전세를 주고 받은 보증금으로 다른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갈 생각도 했지만 수개월째 세입자를 구할 수 없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전셋값 하락이 이어지며 전세 물량이 쌓이고 있는 가운데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역전세난이 현실화하고 있다. 여기에 집값까지 내리면서 계약 만료 시 집을 팔아도 전세보증금을 내주지 못하는 ‘깡통 전세’ 위험도 커지고 있다. 금리인상 때문에 월세선호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역전세난과 깡통전세 위험까지 불거지며 전세시장이 위기를 맞고 있다. 11일 대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 9월까지 임차인이 신고한 ‘확정일자’ 기준 월세 건수는 총 107만3412건을 기록했다. 지난해 전체 월세 거래가 97만7003건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급증한 수치로, 연말까지 3개월 거래가 포함되면 올해 월세 계약은 150만건에 육박할 추산된다. 반면 전국 전세 계약 건수는 올 9월까지 101만1172건으로 월세 거래량보다 6.1% 적었다. 실제로 월세를 찾는 수요자는 늘고 전세를 찾는 세입자는 줄고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원회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부동산원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살펴보면, 서울 아파트 월세수급지수는 지난 8월 100.1로 올해 처음으로 100을 넘겼다. 반면 서울 전세수급지수는 6월 94.7 이후 7월 91.3, 8월 87.7로 매월 낮아지는 추세다. 전·월세 수급지수는 기준선(100)보다 낮으면 집을 구하려는 수요보다 공급이 많고, 높으면 반대로 수요가 많은 것을 의미한다. 월세가격은 수요 몰리면서 오름세다. 8월 서울 아파트 월세 가격은 전월 대비 0.12% 상승하며 2019년 7월 이후 38개월 연속 상승했다. 반면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지난 8월 0.25% 떨어지며 2019년 4월 이후 41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잠실 등 인기지역도 2년 전보다 1~2억원 가량 전세 가격이 떨어졌고, 중저가 수요가 많은 강북은 전세 매물이 적체되고 있다. 강북구 미아동 인근 B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요즘 강남권도 가장 가격이 올랐을 당시보다 1억~2억원 낮춘 전세 매물을 나와도 거래가 잘 안된다고 들었는데 강북권은 더 심하다”며 “임대차법 시행 이후 전셋값이 급등했고, 최근에 가격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지만 세입자들은 여전히 거품이 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대출 이자 부담도 수요 급감에 영향을 줬다”며 “진짜 연말까지 금리가 추가로 계속 오른다면 역전세 현상이 심각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금리 인상에 따른 대출 이자 부담 뿐 아니라 최근에는 집값 하락으로 인한 ‘깡통전세’ 우려도 월세 선호를 부추기고 있다. 깡통전세란 대출금과 전세보증금이 매매가를 웃돌아 집을 팔거나 경매에 나올 경우 보증금을 돌려받기 힘든 경우를 말한다. 올해 들어 금리 인상 등의 여파로 전반적으로 부동산 상승세가 사그라지면서 이러한 깡통전세 사례가 속출하며 전세보증금을 떼이는 사고도 늘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전세보증금반환보증보험 사고 금액이 올해 상반기 기준 3407억원으로 반기 기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전세시장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전세의 월세화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저금리 상황에서 주택 가격이 상승할 때는 월세보다 전세를 선호했는데 집값이 하락하고 이자 부담이 가중되면서 월세 전환 수요가 커지고 있다”며 “전세대출이 보편화된 시장에서 이자가 월세보다 확실히 더 저렴하지 않은 한 월세화는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 “먼저 거래를 원하는 수요자는 공급과잉 지역은 피하면서 무리한 대출보다 자기 자본 비율을 높일 필요가 있다”며 “세입자는 등기부등본을 직접 떼 계약 상대방이 전셋집의 실 소유자인지, 근저당설정액 등을 확인해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