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익선관' 진품 아닌 것으로 최종 확인

남후선 교수“형태적인 면에서 차이 너무 크다”

2014-10-03     조용국 기자
[매일일보 조용국 기자] 지난 2월 경북대 이상규 교수가 진품이라며 공개한 세종 익선관(사진)이 진품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당시 공개한 이 유물이 고부자 박사가 제기한 임금이 착용한 익선모가 아니라는 것이 확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규 교수는 2일 당시 세종이 쓴 익선관이라고 공개한 이 유물에 대한 화학적 검사 등 과학적인 방법으로 확인한 결과 익선관 내부의 시료인 한지와 삼베, 원문 등 3점에 대한 방사선 탄소연대 측정에서 95.4% 신뢰구간이 모두 1669년대 이후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지난 2월 1차 보고에서 밝힌 세종이 착용했을 것으로 추정한 세종 익선관이라는 예측은 전혀 빗나간 예측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탄소연대측정 분석 결과와 내부 구조물과 훈민정음 해례본 제자해의 일부 자료를 분석해 본 결과 이 자료는 17세기 이후 유물로 판명됐다”고 전했다.
 
또 해당 유물은 17~18세기 자료임이 명확한데 누가 어떤 용도로 사용한 모자인지에 대한 문제와 훈민정음 해례본이 1940년 이전에는 발굴된 적이 없었던 점을 들어 여기에 들어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의 제자해의 일부 자료는 어떤 연유로 여기에 들어간 것인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상규 교수는 지난 2월 27일 경북대 글로벌관 202호에서 '임진왜란 때 약탈당한 궁중 유물 세종대왕의 익선모 조사 1차 결과 발표'를 했었다.
 
발표와 함께 세종 26(1444)년 3월 26일 오조용의(五爪龍衣)로 바꾸기 이전 익선관임을 확인할 수 있다는 데는 고증이 부족한 면이 많다는 의견이 제시되는 등 논란이 빚어졌다.
 
따라서 이 유물이 언제, 누구의 것인지는 확인할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가 오직 내부에 들어 있는 훈민정음의 자료 등인 만큼 이를 포함해 외부 직물의 탄소 연대 측정을 선행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또 모자의 모양, 옷감, 직조, 수, 바느질, 무늬, 색 등의 분석이 뒤따라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아울러 일본의 소장자, 소장처에 대한 보다 정확한 정보와 현재 소장자의 소장 경위와 언제, 누가, 어떻게 이 유물이 유출됐고, 어떤 경로로 다시 우리나라에 들어왔는지에 대한 조사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돼 결국 전반적인 조사에 들어갔다.
 
복식 전문가인 남후선(대경대)교수 역시 3가지 이유를 제시하며 이 유물이 익선관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우선 형태적인 면에서 익선관과 차이가 너무 크다는 점을 지적했다.
 
“명대의 익선관은 전옥(前屋)과 후산(後山) 및 날개 모양의 절각(折角)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고 태를 유지하기 위해 속에 대(竹)나 나무, 또는 종이를 댄다. 그런데 이번 공개된 관모는 익선관의 핵심 성분인 절각(翼)이 없는 것은 물론 기존의 익선관의 형태와는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고 했다.
 
또 익선관은 검은색인데 비해 장식과 색상이 너무 화려하다고 했다. 
 
그는 “익선관은 오사(烏紗)라고 하는 검은 천으로 만들기 때문에 속칭 ‘오사관(烏紗冠)’으로도 불린다.
 
관의 색깔은 당연히 검은 색이다. 수로 놓은 장식이 있거나 무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번에 공개한 관은 바탕이 채색이 된 천으로 돼 있으며 천에는 꽃 무늬 등 다양한 장식으로 수를 놓았다.
 
검은 색을 하고 있는 기존 익선관과 비교하면 색상이나 문양이 달라도 너무 다르고 외관이 너무나 화려하다”고 했다.
 
이어 관의 정면 부분에 위치한 ‘卍’(만)자에 대한 의문을 표시했다. 
 
“‘卍’은 관의 전면에 상징처럼 크게 수 놓여져 있다. 卍자는 卍과 같은 ‘만’자로 본래 불교에서 비롯됐다.
 
‘卍’자는 길상과 화복을 뜻하는 것이라고는 하나 불교의 상징으로 이해되고 있다. 불교와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 교수는 그러나 현재까지 풀리지 않은 의문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라며 계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유물은 조선 왕실의 복식발달사연구 자료는 물론 훈민정음 해례본의 이본 연구를 위해서도 매우 가치 있는 사료라고 평가했다.
 
따라서 이 유물 내부에서 나온 자료는 앞으로 학계의 연구 사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공개할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