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한국 대표 수출기업인 삼성전자와 LG전자에 최악의 실적 한파가 매섭게 몰아닥친 가운데 더욱더 혹독한 ‘반도체 겨울’이 찾아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삼성전자의 올 3분기 영업이익이 10조8,000억 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31.73% 급감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증권가 컨센서스(Consensus │ 증권가 전망치 평균) 11조8,600억여 원을 크게 밑도는 ‘어닝쇼크(Earning shock │ 시장 예상치 보다 더 저조한 실적)’ 수준이다.
지난 10월 7일 삼성전자가 공시한 3분기(7∼9월) 연결 기준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76조 원, 10조8000억 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매출은 지난해 3분기(73조9,800억 원)와 비교해 2.73% 늘었는데 영업이익은 지난해 3분기(15조8,200억 원) 대비 31.73%나 줄었다. 전 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이 줄어든 것은 2019년 4분기(10∼12월) 이후 약 3년 만이다. 디스플레이 부문이 호조를 보이고 스마트폰·가전은 선방했지만, 주력인 반도체 업황이 부진한 데다 글로벌 경기 침체 여파로 정보기술(IT) 제품 수요 위축과 재고 급증으로 D램값이 급락한 것이 실적에 악영향을 끼치며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여기에 미국이 중국 반도체에 대한 규제 수위까지 높이는 등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어 실적 부진이 길어질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LG전자도 3분기 실적은 매출 21조1,714억 원, 영업이익 7,466억 원이었다. 매출액은 전 년 동기 대비 14% 늘었고, 영업이익은 25.1% 증가했다. 하지만 영업이익은 지난해 3분기에 제너럴모터스(GM)의 전기차 배터리 리콜 비용으로 4,800억 원 규모의 대손충당금을 반영한‘착시 효과’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를 고려하면 실질적으로는 지난해보다 영업이익이 30%가량 줄어든 것으로 업계에선 보고 있다. 특히 전년보다 더 팔고도, 덜 남기는 수익 구조가 지속되고 있는 점이 문제다. TV 사업의 경우 올레드 TV를 앞세운 프리미엄 시장 공략에도 매출이 감소하는 등 복합적인 위기 상황에 놓였다. 게다가 4분기 전망도 잿빛으로 채워졌다. 증권가 컨센서스(Consensus) 기준 LG전자의 4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21조9,026억 원과 8,394억 원 수준이다. 3개월 전 추정치인 매출 21조8,806억 원, 영업이익 9,076억 원보다 눈높이가 낮아지고 있다.
한편 SK하이닉스의 3분기 실적도 크게 나빠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SK하이닉스의 3분기 실적 컨센서스는 매출액 12조3,236억 원, 영업이익은 2조5,512억 원이다. 전년 동기보다 매출은 4.4%만 늘고 영업이익은 38.8%나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다. 해외 반도체 기업도 잇달아 기대치에 못 미치는 실적을 발표했다. 미국을 대표하는 반도체 설계기업(팹리스 │ Fabless)인 AMD가 시장 예상을 크게 밑도는 3분기 실적을 내놓았다. AMD는 지난 10월 7일(현지 시각) 3분기 실적 발표에서 잠정 매출이 당초 전망치를 1조 원가량 하회한다고 밝혔다. “매출액은 전 년 동기 대비 30% 늘었지만 전 분기 대비로는 15% 감소한 56억달러에 그쳐 시장과 회사 전망치인 67억 달러보다 17%나 낮았다.”라고 밝혔다. 앞서 미국 최대의 메모리 반도체 제조사인 마이크론도 2년 만의 첫 분기 매출 감소를 발표했다. 로이터통신은 “반도체 업계 슬럼프가 생각보다 더 깊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4분기 이후에도 전망이 매우 어둡다는 점이다. 지난해 8월부터 “반도체 겨울이 온다.”라는 우려가 나왔는데 예상외로 1년 넘게 업황이 좋았다. 하지만 올해 3분기(7∼9월)부터 ‘진짜 겨울’이 오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얼어붙은 최악의 ‘반도체 겨울’이 엄습할 것이라는 경고가 무겁게 들린다. 미국이 금리를 대폭 인상하며 애플과 구글 등 글로벌 IT 기업들이 투자를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의 골도 깊어지고 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Kristalina Georgieva)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지난 10월 6일(현지 시각) “내년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당초보다 하향 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IMF는 전망치를 3.6%(4월)에서 2.9%(7월)로 낮췄는데 그보다 더 나빠질 것이라는 뜻이다.
여기에 반도체를 둘러싼 미중 갈등도 반도체 업계의 셈법을 복잡하게 하는 요소다. 로이터통신은 6일(현지 시각) 미국 행정부가 중국에 18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이하 D램과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등 기술과 장비 수출을 차단하는 수출 규제를 발표한다고 보도했다. 중국 현지 반도체 공장을 운영 중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는 수출 규제 예외를 적용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향후 공장 설비 업그레이드나 시설 확장 시 미국이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해 3분기 낸드플래시와 D램 가격이 각각 13~18%, 10~15% 하락한 것으로 추정하며, 내년 세계 D램 시장의 매출이 올해보다 16%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실시한 전문가 설문조사에서도 30명 중 29명이 “반도체 위기”라고 답했고 응답자의 58.6%는 “반도체 위기가 내후년 이후에도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도체는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20%를 차지한다. 무역적자가 6개월 연속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역대 최대치인 48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한국경제연구원의 전망이 나온 가운데 9월까지 6개월 연속 적자 행진을 이어가며 9월 20일까지 누계 기준 292억1,000만 달러의 무역수지 적자에 이어 8월에는 경상수지마저 30억5,000만 달러 적자로 돌아섰는데 반도체 수출이 부진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반도체 위기는 경제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점에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외환위기 때도 반도체 불황이 겹쳤다.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기 위해 공급망을 재편하고 중국에 대한 제재 수위를 높이고 있는 것도 위협 요인이다. 미국 정부는 반도체 장비의 중국 수출을 전면 통제하는 조치를 강화할 것이라고 한다. 중국에 반도체 생산 공장을 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자칫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형국”이 될 수도 있다. 반도체 산업이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외교적 역량을 총동원해 선제 대응해야 한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대들보’ 역할을 해 온 반도체 수출이 꺾인 가운데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중국 경기 둔화, 고(高)환율 등의 여파로 에너지 가격이 뛰면서 수입이 수출보다 더 큰 폭으로 증가하는 역대급 무역 적자에 경상수지 적자까지 이른 바 쌍둥이 적자가 현실화하고, 미국의 견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기는 하지만 중국도 2025년까지 자국에서 소비되는 반도체의 70%를 직접 만들겠다는 '반도체 굴기'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며, 대만과 일본 역시 반도체 산업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야말로 산업의 쌀인 반도체가 사면초가에 처해 있는데도 정치권은 무사태평이다. 「반도체지원법(K-칩스법)」이 8월 초 발의됐지만 심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 미국이 「반도체산업육성법」을 속전속결로 처리해 전 세계 반도체 기업 투자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인 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삼성전자의 ‘어닝쇼크(Earning shock)’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위기를 알리는 준엄한 경고음이다. 각국이 반도체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 ‘반도체 강국’이라는 위상을 지켜내려면 기업의 노력만으론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와 정치권의 전폭적인 지원이 절실한 이유다. 더 늦기 전에 비상한 관심과 경각심을 갖고 반도체 산업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 얼어붙은 최악의 '반도체 겨울'을 극복할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