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은 그렇게 흘리는 게 아니다. 정치인의 눈물을 말하는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칭하는 것이다.
급한 일정이 있어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님의 정치 평론이 시작됐다. 현직 정치부장으로서 관심이 안갈 수 없었다. 기사님은 왜 우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무엇때문에, 왜, 어떤 이유로, 한 국가의 대통령 후보까지 지내고 지금은 거대 야당의 대표인 그가 왜 우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이재명)의 생각을 짐작하면 이렇다.
"정치 검찰의 진실 왜곡과 조작으로 야당 탄압을 조직적으로 하고 있다. 없는 사실을 만들어 또 수감돼 있는 이의 형량을 이유로 사실상 협박을 하며 폭로를 조장한다. 억울하다. 이런 정치 보복은 없었다. 과거 군사독재시절의 조직기획 사건과 다름없다."
그래서 눈물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정치인의 눈물은 그렇게 흘리는 게 아니다. 국민의 삶과 국가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면서 자신의 뜻이 비록 지금은 미덥지 못하더라도 국민들께서 이해해주시고 공감해 달라고 울어야 하는 게 정치인이다.
여의도 안팎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정치가가 있고 정치인이 있고 정치꾼이 있고 정치낭인이 있다."
순서대로다. 정치가는 그야말로 역사에 기록될 만큼의 국민적 추앙과 존경을 받는 이를 말하며, 정치인은 그나마 한 시대를 풍미하면서도 국민을 위해 봉사한 이들을 말한다. 정치꾼과 정치낭인은 그냥 사기꾼으로 보면 된다.
물가 상승률은 근래들어 5%대 중반을 기록 중이다. 밥상물가는 더 심상치 않다. 단돈 만원으로 장을 볼 수 있는 품목 자체가 확 줄었다. 반면 임금상승률은 물가 상승에 미치지 못한다. 월급빼고 다 오른다는 말이 허상이 아니라 현실이다. 수출은 반도체와 같은 주력 품목들의 부진으로 무역수지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경기선행지수가 좋지 못하다.
기준금리는 사상 최고치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코픽스가 오르는 것도 속도감이 붙는 실정이다. 가계부채 부담이 한층 커지는 실정이다. 꼭 영끌족이 아니라 하더라도 이자부담 증가로 일반 가계의 실질 소비력은 급감했다.
산업현장에서는 중대재해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거의 매일 산재로 노동자가 죽어나가고 있다. 코로나가 겨우 진정돼 거리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지만, 겨울철 독감이 유행하면서 감염병재생산지수가 최근 9주만에 1을 넘어 재유행이 우려된다.
스토킹 범죄는 갈수록 흉악해지며, 이른바 헬조선의 무게감을 더하고 있다. 아동 성범죄도 마찬가지이고, 화이트칼라의 금융범죄도 빈발하게 발생한다. 시중에서는 마약이 손쉽게 유통되면서 청소년까지 마약에 쉽게 빠지는 상황이다.
이런게 울어야 할 이유다. 이런게 정치인이 울어야 할 이유다. 아니 울어야 할 게 아니라 국민께 무릎을 꿇고 빌며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국민 삶에 희망을 주지 못했다고 사죄해야 할 일이다.
정치 검찰로 인해 억울하다가 울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당장 국민의힘은 이재명의 눈물을 힐난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 즉 국민의힘이 비판하는 요지도 틀렸다. 박대출 의원은 이 대표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완구 전 원내대표, 유승준씨의 눈물을 비아냥 댔다고 했다. 권성동 의원은 해수부 공무원 유가족의 눈물과 대장동 원주민의 눈물을 예로 들었다.
정치적이다. 다 틀렸다는 게 아니라 정치적이다. 그들이 비판하는 이야기도 논점에서 벗어났다. 기왕에 비판할 것이면, 앞서 말한 추운 겨울이 다가오는 아니 이미 일년내내 추운 겨울 속에 살고 있는 국민의 구체적 아픔을 이야기했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정치 지도자 특히 지도자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는 과거 일제강점기를 거쳐 군사독재시절을 통해 형성된 정치인은 곧 지도자 즉 우매한 국민을 이끌어가야 하는 이로 보는 관점에서 굳어진 단어다.
지금의 정치인은 국민을 대표해 법과 제도를 만들고 이를 집행하는 대의 민주주의의 대리인일 뿐이다. 그런 까닭에 그들이 흘려야 하는 눈물은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울지마라. 꼴보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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