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랜드 사태ㆍ안 잡히는 물가…딜레마에 빠진 한은 통화정책

물가·환율 오름세 여전...이창용 총재도 '긴축유지' 시사  채권시장發 위기감 고조...금리인상 속도조절 가능성도

2023-10-25     이광표 기자
이창용


[매일일보 이광표 기자] 다음달 예정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한은은 그간 물가 상승(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추기 위해 금리를 전격 인상하며 돈줄을 조여왔지만, 채권 시장을 중심으로 돈줄이 말랐다는 아우성이 커지자 수도꼭지를 풀어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서다.

강원도 레고랜드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로 악화된 채권시장의 자금경색을 진정시키기 위해 정부가 50조원 이상의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가동한 가운데, 긴축 기조를 유지해온 한은의 통화정책 방향도 딜레마에 빠진 형국이다. 문제는 치솟는 물가와 환율이 여전히 진정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25일 한은이 발표한 10월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석 달 만에 상승반전했고, 이날 원·달러 환율은 장중 1440원을 돌파하며 연고점을 돌파한 상태다. 이에 '인플레 파이터'를 자처했던 한은 입장에선 기준금리를 올리는 통화긴축 정책 기조를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지만, 자칫하면 금리인상으로 인한 자금경색이나 시장 불안이 재차 불거질 가능성을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다. 25일 금융시장에 따르면 한은이 다음달 24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한번에 0.5%포인트 올리는 추가 빅스텝 가능성을 시사해 왔지만 자금경색 우려가 커질 경우 금리인상 폭과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노무라증권의 경우 한은이 다음달 금리를 0.25%포인트 올린 후 금리 인상 사이클을 종료할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내놨다. 다만,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고강도 긴축 등 이번 달 금통위에서 0.5%포인트 인상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전제 조건들이 11월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추가 '빅스텝'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여전히 우세한 건 사실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통화정책 기조엔 흔들림이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23일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가 끝난 후 기자들과 만난 이 총재는 "우리나라는 기업어음(CP) 중심으로 문제가 있지 은행중심 자금순환은 문제가 없어 거시 통화 정책 운영에 대한 전제조건이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시장에 직접적인 유동성 공급을 하지 않는 안정 조치는 하더라도 기준금리를 올려 유동성을 줄이는 통화 긴축기조는 이어가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백윤민 교보증권 연구원은 "이창용 한은 총재의 빅스텝 인상 관련 발언을 채권시장이 어떻게 소화할지가 관건"이라며 "10월 금통위에서 0.5%포인트 인상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전제 조건들이 11월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부터 지속돼 온 금리인상으로 기업들의 자금경색이 진정되기 어려운 만큼 한은이 추가 '빅스텝'을 단행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금리인상으로 신용도와 유동성이 낮은 신용채권의 투자수요가 크게 위축된 데다, 한전채·은행채 등 초우량물 발행 확대와 이에 따른 신용채권 간 구축효과 등 공급요인이 가세하며 신용스프레드는 큰 폭으로 확대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고채 3년물과 회사채(AA-등급) 3년물 간 차이인 '신용스프레드'는 20일 128bp(1bp=0.01%p)로 벌어졌다. 박정우 노무라 증권 이코노미스트는 "한은이 11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년 1월 0.25%포인트 올려 최종금리가 3.5%가 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레고랜드발 자금조달 등 국내 금융 스트레스가 커지고 있어 11월 인상이 이번 금리 인상 사이클의 마지막이 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고 내다봤다. 이와 별개로 시장참여자들은 한은을 향해서도 정부와 궤를 같이하는 유동성 공급책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 회사채 시장이 급속히 얼어붙자 한은에 '금융안정특별대출 제도' 재가동을 비롯해 회사채 매입 기구(SPV) 재가동 등 한은이 추가적인 시장 안정화 방안을 내놔야한다는 요구다. 금융안정특별대출 제도는 증권사와 보험사, 은행 등 일반기업이 발행한 우량 회사채(신용등급 AA- 이상)를 담보로 최장 6개월 이내로 대출하는 것으로 비상시 유동성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장치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 새로 도입됐다가 지난해 2월 종료됐다. 은행들도 한은으로부터 대출할 때 담보로 제공하는 적격담보증권에 은행채도 포함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현재 적격담보증권에는 국채, 통화안정증권, 정부보증채 등 국공채만 담보로 하고 있다. 한은은 2020년 3월 코로나19 사태 때 은행채를 적격담보증권으로 인정했다가 지난해 3월 이를 종료한 바 있다. 한편 한은은 오는 27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2020년 코로나19 당시 유동성 지원 방안으로 추진된 무제한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를 통한 회사채· 기업어음(CP) 매입, 금융사의 회사채를 담보로 하는 금융안정특별제도 재도입 여부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