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랜드 사태 후폭풍 일파만파…우량등급 회사채도 안 팔려

A등급 회사채 거래 규모, 한달 전보다 80% 급감 시한폭탄 된 부동산 PF…올해 6월 기준 150조원 정부, 은행 건전성 규제 완화해 유동성 공급 총력

2023-10-26     홍석경 기자
레고랜드
[매일일보 홍석경 기자]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사태 이후 시장에서 자금 경색 현상이 짙어지고 있다. 금리 상승과 경기 침체 우려 속에 회사채 시장에는 한파가 불어닥치고 있다. 특히 A등급 회사채에 대한 수요가 부진하다. 최상의 신용등급도 아니고, ‘하이일드’(고위험·고수익)에 속하지 않는 애매한 지위 탓에 투자심리가 위축한 영향이다. 정부는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를 가동하고, 시중은행의 건전성 규제를 완화해 유동성 공급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시장위축에 A등급 회사채 유통량 ‘뚝’

26일 KIS채권평가에 따르면 지난 14∼20일 장외 채권시장에서 체결된 거래 규모를 뜻하는 회사채 유통금액을 등급별로 볼 때 A등급은 705억원에 그쳤다. 이는 직전 주(지난 7∼13일)의 1660억원과 비교해 57.5% 감소한 수준이다. 약 한 달 전(9월 16∼22일)과 비교하면 3655억원에서 80.7% 급감한 규모다. 그새 강원도 레고랜드 ABCP 사태 발생으로 회사채 시장이 더욱 위축된 탓도 있지만 다른 등급과 비교할 때 이 같은 유통량 급감은 과도한 수준이다. 최고 등급인 AAA의 경우 한 달 전(9월 16∼22일) 유통 규모는 9995억원에서 지난 14∼20일 1조2286억원으로, 역시 우량등급에 속하는 AA등급 회사채도 같은 기간 1조5601억원에서 2조7635억원으로 오히려 늘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3분기 A등급 회사채의 미매각률은 58%로, AA등급 이상(5%)이나 BBB등급(9%)과 비교할 때 월등히 높았다. A등급의 소외 현상은 기본적으로 발행 규모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금리 인상과 경기 침체, 여기에 레고랜드 사태까지 겹쳐 회사채 시장이 한껏 경색된 상황에서는 유동성이 떨어지는 A등급 회사채의 인기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렇다 보니 결정 금리도 작년 3분기보다 31.4bp(1bp=0.01%포인트)나 급등해 자금조달 부담도 커졌다. A등급이 대규모 발행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고정된 수요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량등급은 신용도가 높아 기본적으로 찾는 투자자가 많고 BBB급 이하 비우량 등급은 ‘고위험·고수익’을 추구하는 투자자들 수요가 항상 존재하는데 A등급은 입지가 애매하다는 것이다.

◇150조원 규모 부동산 PF…금융시장 ‘화약고’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금융권의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지난 6월 기준 112조원에 달한다. PF유동화증권 등을 합치면 150조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부동산 호황기에 PF 비중을 크게 늘려온 제2금융권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크다. 제2금융권은 사업인허가 전 단계에서 시행된 뒤 추후 본 PF 대출을 통해 상환되는 ‘브릿지론’의 취급 비중이 큰데, 올해 하반기 이후 전 금융권에서 PF 실행을 중단하면서 브릿지론 부실화에 대한 우려가 커진 상황이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이달(지난 18일 기준)부터 연말까지 증권사에서 만기가 도래하는 유동화증권(ABSTB, ABCP) 발행 잔액은 27조원에 달한다. PF 유동화증권들이 팔리지 않을 경우 증권사는 직접 매입을 해야 한다. 이명준 나이스신용평가 선임연구원은 “아직은 증권사가 보유하고 있는 유동성으로 차환발행 물량이 어렵게 소화되고 있지만 이와 같은 시기가 더 길어진다면 차환 발행 중단에 의한 건설사, 증권사 신용위험이 커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2금융권의 부동산 PF 대출의 부실화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여신전문금융회사의 PF 관련 고정이하여신 규모는 올 상반기 말 기준 2289억원으로 작년 말보다 3배 가까이 급증했다. 보험사의 부동산 PF대출 부실채권비율 역시 6월 말 0.33%로 작년 말(0.07%)보다 5배 가까이 늘었다.

◇정부, 시중은행 건전성 규제 완화…유동성 공급 총력

금융위원회는 이날 금융산업국장 주재로 금융감독원,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은행 등 5개 주요 은행 부행장과 함께 ‘제2차 은행권 금융시장 점검회의’를 열었다. 금융당국은 은행권이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정상화 조치 유예 이후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자금 공급 여력이 확대됐으며, 은행채 발행을 최소화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지난 20일 제1차 점검회의에서 은행 통합 LCR 규제 정상화 조치를 6개월 유예키로 결정한 이후 은행권의 시장안정 기여 상황 등을 점검했다. 은행들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85%로 완화된 LCR 비율을 오는 12월까지 92.5%로 높여야 하는데, 금융당국은 이를 내년 6월 말까지 유예했다. 최근 은행들이 LCR 비율을 맞추기 위해 은행채 발행을 대거 늘리면서 회사채 시장 불안에 일조한다는 지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단기자금시장 및 채권시장 안정을 위해 기업어음(CP),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전단채 매입 등을 추진하고 환매조건부채권(RP)매수, 머니마켓펀드(MMF) 운용 등을 통해 유동성을 공급하는 한편, 채안펀드 캐피탈콜(추가 수요가 있으면 투자금을 집행하는 방식)에 신속히 응하고 은행채 발행을 최소화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또 기업부문에 대한 자금공급을 원활히 하기 위해 산금채 등 특수은행채 매입 및 기업대출, 크레딧 라인 유지 등의 지원을 지속하겠다고 했다. 금융위는 “은행권이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버팀목 역할을 해 줄 것을 당부했다”며 “앞으로도 현장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시장상황에 대한 모니터링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