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대출 사상 처음 700조 돌파… 금리인상發 줄도산 경고등
채권 발행 통해 직접 자금 조달 어려워지자 너도나도 은행行 전경련, “채무불이행 사태 대비…유동성 대책 마련해야” 촉구 한은, “경기 둔화·대출금리 인상發 ‘한계기업’ 상승할 것” 경고
2023-11-01 홍석경 기자
◇ 5대 은행 기업대출 700조원…가계대출 제쳐
1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기업대출 잔액은 지난달 27일 기준 703조7512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635조8878억 원)과 비교해 10개월 새 67조8634억 원 늘어 700조원을 넘어섰다. 이는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698조2884억 원)을 웃도는 규모다. 올 들어 가계대출이 10조 원 넘게 감소한 반면 기업대출은 매달 평균 6조8000억 원씩 불어 가계대출을 역전했다. 은행과 제2금융권을 포함한 전체 금융권의 기업대출은 6월 말 현재 1672조 원으로 올 들어서만 130조 원 급증했다. 올해 초부터 원자재 가격 상승과 고환율 등으로 수익성이 악화된 기업들이 은행 대출을 늘려 온 데 이어 최근 채권 시장 경색으로 자금난이 전방위로 확산되자 대기업들까지 은행으로 눈 돌린 결과로 풀이된다. 실제로 5대 은행의 기업대출은 10월에만 8조8522억 원 급증했는데 이 중 67%(5조8592억 원)가 대기업 대출이었다. 기업 빚 증가 속도는 세계적으로도 매우 빠른 수준이다. 국제금융협회(IIF)의 ‘세계 부채 보고서’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금융사 제외)은 117.9%로 1년 새 6.2%포인트 늘었다. 조사 대상 35개국 가운데 베트남(7.3%포인트)에 이어 두 번째로 증가 속도가 빨랐다. 한국의 가계부채 비율은 102.2%로 1년 전보다 3.0%포인트 줄긴 했지만 여전히 세계 1위를 이어갔다.◇전국경제인연합회 “금리인상 속도조절 필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기업 대출 부실 징후 및 대응 방안 자료를 통해 채무불이행 사태가 촉발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유사시 기업 유동성을 확충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전경련은 기업 대출의 부실 징후로 코로나 이후 급증한 대출, 기업의 상환능력 악화, 높은 변동금리 비중, 부동산 등 취약 업종으로의 대출 쏠림현상,비은행 기관을 통한 대출 증가 등 5가지 요인을 지적했다. 코로나 이전 10년간(2009~2019년) 기업 대출은 연평균 4.1% 증가했지만, 코로나 이후 현재까지 2년 반 동안 연평균 증가율은 12.9%에 달했다. 기업 대출금액은 2019년 말 976조원에서 현재 1321조원으로 35% 증가했다. 대출금이 늘어난 상황에서 상환 능력은 취약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부채 상환능력을 평가하는 지표인 DSR(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 비율)은 2019년 37.7%에서 2022년 39.7%로 높아졌다. DSR이 높을수록 상환 능력이 취약함을 의미한다. 기업 대출은 금리가 오르면 원리금 상환 부담이 늘어나는 변동금리 대출이 대부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대출 잔액 기준으로 기업의 72.7%가 변동금리 대출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전경련은 기업 대출 부실화를 막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 속도 조절, 법인세제 개선을 통한 세 부담 경감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추광호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시중에 유동성이 풍부해졌다가 금리가 인상되면서 기업들이 자금난, 신용경색 등을 겪었다”며 “유사시 기업 유동성 지원을 위한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도 사전에 강구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은 “금리 상승에 한계기업 늘어날 것”
은행권의 기업 대출은 앞으로도 당분간 빠른 속도로 늘어날 전망이다. 채권시장 자금 경색으로 채권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기업들이 결국 은행을 통한 간접 조달(대출)에 기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국은행과 금융당국까지 나서 은행이 한은에 맡기는 적격담보증권의 대상을 늘려주고 예대율(예금잔액 대비 대출잔액 비율) 등의 은행 유동성 규제 기준도 낮춰주면서 대출을 독려하는 만큼, 은행 입장에서는 쉽게 대출 문턱을 다시 높일 수 없는 상황이다. 은행의 기업 대출 급증에 따른 부실 위험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은은 앞서 지난달 ‘금융안정 보고서’에서 “기업 신용(빚)의 높은 증가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국내외 경기 둔화, 대출금리 인상, 환율·원자재가격 상승 등 경영 여건이 나빠질 경우 기업 전반의 이자 상환 능력이 약해져 올해 한계기업 비중은 전년보다 상당폭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21년 기준 한계기업 수와 차입금의 비중(금융보험업 등 제외한 전체 외부감사 대상 기업 대비)은 각 14.9%, 14.8%로,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인 2019년 수준(14.8%, 15.0%)까지 줄었다. 매출 증가와 수익성 회복의 결과라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하지만 올해 최악의 경영 여건 시나리오에서 한계기업 수와 차입금 비중은 각 18.6%, 19.5%까지 다시 커질 것으로 예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