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에 ‘돈 빌려 예금’ 이색 투자 눈길
불경기에 기업들 현금성 실탄 비축…고금리에 예금담보 대출도 확대
2023-11-07 홍석경 기자
[매일일보 홍석경 기자] 기업과 소비자들 사이에서 현금 확보을 위한 움직임이 뚜렷하다. 금리인상이 정점을 이룰 내년 상반기를 염두에 두고 일단 현금성 실탄을 비축해두고 있다는 분석이다. 7일 금융권에 지난 9월 말 기준 기업대출 잔액은 전월 대비 9조4000억원 증가한 1155조5000억원으로 집계됐다.
9개월 연속 증가세다. 지난달 기업대출은 5대 시중은행에서만 15조원 이상 늘었다. 대기업 대출은 9조9088억원, 중소기업 대출은 6조6651억원이 늘었다. 대기업 및 중소기업 대출 증가폭은 13개월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최근 기업들이 대출을 늘린 이유 역시 당장 투자에 활용하거나 비용을 대기 위한 것이 아니라 비축이다.
기업대출 잔액이 늘어나는 동안 기업예금도 늘어났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에 따르면 올 초 579조2777억원이었던 기업원화예금은 지난 8월 607조6301억원으로 28조3524억원 늘었다.
특히 저축성예금이 1.4배 증가하는 동안 요구불예금은 1.7배로 더 크게 늘었다. 기업들이 수익률을 바라보고 장기적인 투자에 나서기보다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단기예금을 확보하는 데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기업대출 및 기업예금이 크게 증가한 것은 채권시장이 얼어붙은 영향이 크다는 것이다. 특히 레고랜드 사태 이후 기업예금이 급증했다는 설명이다. 금리가 계속해서 높아지는 상황에 은행도 건전성 관리에 나서면 신용등급이 높거나 담보가 있어야만 대출을 해주려고 할 수도 있어 지금 금리가 가장 싸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일반적인 소비자들 움직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고금리 혜택을 찾아 자금을 옮겨 다니는 ‘금리 노마드족’도 움직임이 활발해지는 추세다. 이들은 재테크 커뮤니티를 통해 고금리 상품 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물론,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재테크 노하우를 나눈다.
이들의 관심이 쏠리는 상품 중 하나는 예금담보대출을 통한 ‘빚내서 예금 가입’이다. 기존 예금을 해지하지 않고도 고금리 상품에 투자할 자금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금담보대출은 예적금 통장 잔액을 담보로 은행에서 잔액의 80~100% 가량을 대출해주는 상품이다.
지난달 24일 기준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의 예금담보대출 잔액은 4조2448억원으로, 9월 말 대비 955억원 증가했다. 이는 올해 최고 월별 증가액(462억원)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이달 12일 결정된 두 번째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 이후, 예금 금리 인상이 가속화되며 예금담보대출의 인기도 함께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