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 합법화’하는 한국의 뇌물방지법

한국, OECD뇌물방지협약 이행 수준 2단계 하락

2014-10-09     박지선 기자
[매일일보] 국제투명성기구가 지난 8일 발표한 ‘2013년 OECD 뇌물방지협약 이행 평가보고서’에서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뇌물방지협약을 거의 이행하지 않는 국가로 분류됐다.

반부패기구와 검사기관에 정치적 간섭을 하는 사례가 지적됐고, 해외뇌물에 대한 경제적 제재가 부족했으며 한국의 기업분야 내부고발자는 보호를 잘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뇌물방지협약은 외국정부에 뇌물(예를 들면 계약, 면허를 따거나 세금, 현지법을 회피하기 위해)을 주는 관행을 중단시키기 위한 40개의 주요수출국 간 합의를 말하는데 한국은 지난해 ‘보통 이행국’에서 올해 ‘이행이 거의 또는 전혀 없는 국가’로 두 단계 등급이 하락했다.4개 등급 가운데 최하위인 이 등급에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 네덜란드, 러시아, 스페인, 멕시코 등 20개 국가가 이름을 올렸다.최고 등급인 ‘적극 이행 국가’에는 미국, 독일, 영국, 스위스 등 4개 국가가, ‘보통 이행 국가’에는 이탈리아, 호주, 오스트리아, 핀란드 등 4개국이 포함됐다. 프랑스, 캐나다, 스웨덴, 노르웨이 등 10개국은 ‘제한된 이행 국가’로 분류됐다.국제투명성기구는 “한국에서 반부패기구·검사기관에 대한 정치적 간섭 사례가 나타났고, 해외에서 뇌물 사건에 연루된 사람을 수사·처벌하는 법제가 부족하며 기업의 내부고발자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는 점 등을 평가에 반영했다”고 설명했다.시행제도의 부족도 원인으로 꼽혔다. 국내 수사와 고발당국들이 충분한 제도적 지원을 받지 못함에 따라 관련 업무의 효과성이 떨어지고 조직화 돼 있지 않다고 국제투명성기구는 설명했다.특히 국제투명성기구는 2008년 정부가 부패방지위원회(KICAC)를 행정심판위원회, 국민고충처리위원회와 합병시켜 국민권익위원회(ACRC)라는 기관을 설립한 것은 유감스러운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이 합병이 KICAC의 독립성을 약화시키며 조직을 부패와 관련되지 않은 행위로 다각화시켜 부패에 맞춘 초점이 희석되었기 때문이다.국제투명성기구는 해외 뇌물 사건의 수사·기소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 민간 내부고발자 보호, 권력남용을 막기 위한 검찰 개혁, 고위공직자 비리 의혹을 수사하는 독립된 기구 설립 등을 권고했다.한편 한국투명성기구 김거성 회장은 “우리나라도 OECD뇌물방지협약에 따라 ‘국제상거래에서 외국공무원에 대한 뇌물방지법’을 제정했지만 급행료 등 뇌물을 줄 수 있는 조항을 두는 등 문제도 많고 이 법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고 밝혔다.김거성 회장은 “국내에서건 해외에서건 뇌물을 통해 사업의 성공을 이룰 수 있었던 시대는 지났다”며,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우리나라가 자칫 국제사회에서 부패국가로 낙인찍힐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보고서에서 우리 기업이 아직 외국에 나가 현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는 방식으로 사업하는 사례가 지적되는 등 구체적인 권고를 많이 했는데 이를 하루속히 받아들여 뇌물방지협약당사국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며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부패국가로 낙인찍히지 않고 투명한 나라로 인식되도록 민간과 정부 모두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