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시·도교육청 ‘기울어진 운동장’, 누가 바로잡을 것인가

2022-11-18     권영출 한국교육연수원 협회장

[매일일보]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는 민간 주도, 시장 중심, 규제개혁으로 요약된다. 하지만 실행부서와 따로 노는 정책으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지난 9일 KERIS(한국교육학술정보원)와 한국원격교육연수원 등이 주체가 돼 열린 포럼에서 정부의 정책과 법 정신을 믿고 설립한 대학 및 민간의 원격연수원들이 파산에 직면해 있다는 절규를 쏟아냈다. 약 45만 교사들의 수업 개선과 역량 강화를 위해서 2000년도부터 교육부의 인가를 득하고 20여 년간 대학과 민간연수원이 주도적으로 원격교육 서비스를 진행해 왔다. 그러나 시장 규모가 현직 교사로 한정돼, 과도한 경쟁으로 시장 질서가 무너질 수 있다.

실제로 ‘교원 등 연수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에서도 인지해 장관이 연수원의 숫자를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 그간 대학 부설 원격연수원을 포함해 30여 곳의 연수원이 있지만, 대부분 연간 매출 10억원을 넘지 못하는 중소기업 규모의 작은 연수원이 90% 정도를 차지한다. 7~8년 전부터 시·도교육청은 풍부한 교육예산을 앞세워서 원격연수 시장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민간연수원의 프로그램과 중복을 피하고자 ‘정책연수’ 중심으로 한 두 개 서비스를 진행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더 많은 예산을 투자하면서 기존에 민간연수원이 제공하는 교육프로그램과 중복되는 분야를 개발하더니 이마저 무료로 교사들에게 공급했다.

현장 교사들은 같거나 비슷한 연수인 경우, 연수비를 지출하지 않아도 되는 시·도교육청의 무료연수를 택하게 된다. 하지만 무료연수도 국민 세금으로 제작된 것이며 이로 인해 연수프로그램에 개발비와 제작비를 투입한 대학 및 민간연수원은 엄청난 피해를 보았다. 결국 대학 부설 원격연수원들이 먼저 폐원을 시작하더니, 민간연수원들도 폐원하거나 파산하는 곳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마치 사막의 텐트에 들어오고 싶은 낙타가 처음엔 얼굴만 넣게 해달라고 하더니, 마지막에는 주인을 쫓아내고 낙타가 텐트를 독차지했다는 이야기가 ‘원격연수원’ 분야에서도 똑같이 일어난 것이다. 특히,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데 앞장서야 할 공공기관이 막강한 예산을 동원해 공정한 경쟁을 저해한다면 국민은 왜 세금을 내야 하는지 의구심을 갖게 될 것이다.

윤수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8월 16일 △공정거래법 집행 혁신 △자유로운 시장 경쟁 촉진 △시장 반칙행위 근절 △중소기업의 공정한 거래기반 강화 △소비자 상식에 맞는 거래 질서 확립 등의 업무계획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한 바 있다. 대기업 수준의 시·도교육청과 중소기업 수준의 민간 원격연수원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하는 것을 교육부는 그냥 보고만 있었는지 묻고 싶다.

민간의 경제가 활성화돼야 더 많은 세금을 내고, 국가가 부강해진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공공기관의 개입으로 기존의 시장 질서가 이런 식으로 무너진다면 누구도 국가를 신뢰하기 힘들 것이다. 코로나19 동안 일반인과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한 온라인 교육기업은 큰 폭의 매출 증가가 있었다. 이처럼 코로나19는 원격교육 기관에 좋은 성장의 기회였다. 그러나 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민간 원격연수원은 쪽박을 차고 파산하는 역설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주된 원인은 ‘무료연수 vs 유료연수’ 그리고 ‘백화점 vs 재래시장’의 경쟁 구도 때문으로 요약할 수 있다.

시·도교육청과 중앙교육연수원의 원격교육연수원이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그런 결과를 만들었다. 지금이라도 남아 있는 소수의 민간 원격연수원들이 모두 파산하기 전에 교육부는 현실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말이 민간기업에 특혜를 주자는 의미는 아니다. 독과점의 폐해를 주의하고 민간기업이 보유한 풍부한 노하우와 기술을 활용해 중복 투자를 방지하고 공공기관은 수요와 비교해 투자 비용이 많이 들거나 원천 기술이 필요한 데 집중해야 한다.

학교 현장에 필요한 솔루션과 콘텐츠 기획 및 개발은 민간기업이 더 잘할 수 있는 영역이다. 공공기관은 민간의 강점을 극대화해 경쟁력을 키워주어야, 해외 기업과의 경쟁에서 국내 산업이 보호되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정부는 민간 에듀테크 기업이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시장환경을 조성하는 데 힘 써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