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원칙에 따른 KAL기 납북자 송환이 이뤄져야 할 때

2023-11-20     황인철 1969년KAL기납치피해자가족회 대표
[기고] 2020년 2월 13일 유엔인권이사회 산하 강제적 비자발적인 실종 실무 그룹(WGEID)과 자의적 구금에 관한 실무그룹(WGAD)은 KAL기 납북 사건 50주년을 맞아 북한 당국에 KAL기 납북 미귀환 10인과 황원(당시 32세, MBC PD)의 송환과 석방을 요구했다.  이는 북한의 국가 책임을 발생시키는 조치로, 북한은 책임 해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납북자 황원은 나의 아버지다. 내 나이 두 살이던 지난 1969년 12월 11일 황원은 직장 상사를 대신해 출장을 가기 위해 비행기에 탑승했다. 그러나 그의 비행기는 이륙 후 10분 만에 승무원 4명과 승객 46명이 북한의 고정 간첩 조창희에 의해 북으로 하이재킹(공중 납치)당했다. 국제사회의 비판 여론을 의식한 북한은 1970년 2월 4일 전원 송환을 약속했으나 돌연 약속을 어기고 1970년 2월 14일 승객 39명만 부분 송환했다. 돌아온 39명은 북한의 잔인한 범죄 행위의 증인이 됐다. 당시 젊은 언론인인 나의 아버지 황원은 전 세계인을 상대로 자행하는 하이재킹은 국제범죄 행위이며, 국제사회가 용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당당하게 북한 당국에게 국제법과 국제관습법에 따른 빠른 송환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나의 아버지는 2월 정월 초하룻날 김동진 작곡 ‘가고파’ 노래를 부르다가 북한군들에 의해 어디론가 끌려가 사라졌고, 이날 이후로 한 사람씩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는 증언이다.  돌아온 39명의 생생한 증언에 따라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는 북한 당국에 KAL기 납북 미귀환 11인의 송환을 요구했으나 북한은 ‘남으로 돌아가지 않은 자들은 자의에 의하여 북한에 머무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ICRC는 제3국과 제3자를 통해 미귀환 11인의 의사를 확인할 것을 요구했으나 북한은 거절했다. 이에 국제사회는 미귀환자 11인의 송환과 세계인들의 안전한 비행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기에 이른다. 1970년 7월 1일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항공기와 승객과 승무원의 계속적인 여행을 요구하는 결의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고, 9월 9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제286호 결의문을, 12월 제25차 유엔총회에서는 ‘항공기 불법 탈취에 관한 규탄 결의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듬해에는 ‘항공기 불법 납치 억제에 관한 협약’(1970년 헤이그 협약)이 창시됐다. 각 국가가 이 ‘협약’에 비준함으로써 지금의 우리는 하이재킹에 대한 두려움 없이 안전한 비행을 할 수 있게 됐다. 내 나이 34세 되던 지난 2001년, 아버지와 함께 납치당했던 스튜어디스 성경희 씨가 제3차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가족과 상봉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아버지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사건이 금방 해결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KAL기 납북 사건은 이미 잊혀진 사건이었고, 나는 22년간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  뼈 아프고 시린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나는 ‘국제법과 국제 관습법으로 나의 집으로 돌려보내 주십시요!`라고 말했던 아버지의 한과 절규가 느껴져 포기할 수 없었다. 국제사회는 여전히 북한에게 KAL기 송환과 납치자들의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국제 질서를 북한이 어겨서는 안 된다. 돌아오는 12월 11일은 KAL기 납북사건이 발생한 지 꼬박 53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을 시작으로 나는 황원 주니어(Jr)라는 이름으로 ‘북한 당국에게 송환을 요구하는 목소리’ 국제캠페인을 시작하려 한다.

국민의 열망과 힘으로 아직도 국제법상 하늘에 떠 있는 KAL기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비행을 완료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