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구광모 LG그룹 회장의 바텀업

2023-11-24     이재영 기자
[매일일보 이재영 기자]구광모 LG그룹 회장은 개별 사업 성과에서 자신이 앞서 언급되는 것을 꺼린다고 한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다. 전날 발표된 그룹 인사에 나타난 성격도 비슷했다. 정호영 LG디스플레이 사장이 유임됐다. 실적 부진을 겪은 LG디스플레이 사정을 고려하면 교체될 확률도 있었다. 눈에 보이는 실적으로만 평가한다면 그랬다. 거꾸로 정 사장이 유임된 데는 업황이나 상대평가 등 인사정책의 합리성이 엿보인다. 차동석 LG화학 최고재무책임자(CFO) 겸 최고위기관리책임자(CRO)가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한 것은 성과주의 인사다. 수치만 보면 LG화학도 3분기 개별 실적은 영업이익이 하락했다. 하지만 업종 경쟁사들 대비 상대평가를 한다면 승진인사가 합당해 보인다. 그룹 총수의 세대가 바뀌면서 경영스타일도 바뀌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4세 경영승계는 없다고 선언한 것 역시 세대관을 바꾼다. 구광모 회장 스스로 자신의 가치관이나 경영관에 대해 길게 얘기한 적은 없다. 그래도 공과가 분명해 보이고 책임소재를 구분짓는 방식 등은 이전에 익숙했던 대기업집단의 탑다운 경영방식과는 달라 보인다. 한쪽에 치우치면 부작용이 있다. 탑다운과 바텀업도 양자택일은 아니다. 다만 과거 대기업집단 의사결정구조에서 탑다운이 많았던 것을 고려하면 요즘 바텀업이 권장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바텀업은 동기부여, 사기진작, 구성원과 전문경영인의 책임의식 고양 등의 효과가 있고 구성원의 다양한 아이디어가 모여 의사결정 단계를 밟아 올라가는 구조상 혁신과 창의성을 발휘하기에 유리한 방식이다. 요즘처럼 4차산업혁명, 디지털전환, 메타버스 등 사업전략의 혁신이 필요한 시대정신에도 부합한다. 구광모 회장이 누누이 강조해온 것도 바텀업이다. 그는 올해 사장단 워크샵에서 “미래준비는 첫째도, 둘째도 철저히 미래고객의 관점에서 고민해야 한다”라며 “미래고객이 누구이고, 정말로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에 대해 우리는 어떤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것인지, 수없이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것이 미래준비의 시작이 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워크샵에서도 "고객 가치 경영에 집중해 사업의 경쟁력을 질적으로 레벨업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라며 "재무적 지표에 앞서 고객 가치로 무엇을 만들지, 어떻게 혁신할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할 때"라고 일관되게 말해왔다. CEO나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매달리는 것이 아닌 고객의 관점에서 생각하라는 것이 바로 바텀업이다. 과거 대기업집단이 고도성장을 이끌었던 때 탑다운에 가까운 기업 총수의 기업가정신은 분명 성공의 열쇠였다. 리더십, 도전, 진취성, 과감한 결단으로 설명되는 기업가정신은 그룹들의 주된 성장전략이었던 사업다각화와 궤를 같이했다. 그런데 지금 LG를 비롯해 관련 다각화에 집중하는 그룹들이 전통의 경영방식을 고수하는 것은 맞지 않다. 탑다운식 비관련 다각화는 금융위기 때 일부 기업집단의 몰락을 초래했다.

내년 경제대침체가 다가올 것이 분명해진 상황에서 탑다운, 기업가정신은 다시 역할이 필요해 보인다. 그 속에서도 미래 대응을 위한 변화와 혁신은 계속돼야 한다. 변화와 안정, 위기 대응 등 복합적 역량이 필요한 상황에서 탑다운과 바텀업의 조화를 이뤄나가고 있는 LG그룹이 또다른 벤치마킹 사례가 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