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덕 특별기고]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는 인간의 오만(hubris)

수목치료기술자 임창덕

2023-11-25     김동환 기자
[매일일보] 우리는 살기 위해 호흡을 한다. 먹지 않고 한 달을 버틴다지만 산소 없이는 몇 분을 살기가 힘들다. 생존에 필요한 산소는 나무 등 식물의 광합성 작용, 즉 탄소동화작용 과정에 만들어진다. 식물이 빛 에너지를 이용하여 이산화탄소와 물을 원료로 하여 탄수화물과 산소를 만든다. 그 산소를 에너지 삼아 인간은 생체 에너지의 대부분을 만들고, 산소 부족 시에는 체내에 각종 독소가 누적되고 쌓이면 생체 에너지 대사 능력이 떨어진다. 그만큼 산소가 중요한데, 이 원소는 지구의 어느 곳에서 온 것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바로 나무와 같은 식물에서 왔다. 이처럼 인간과 식물은 상호 의존적이고 공동체로 엮여 있다. 주변에 식물이 많지 않은 사람일수록 병과 죽음에 가까워질 위험이 커진다고 했다.  요즘은 반려 식물이라고 하여 식물에서 심신의 안정을 받고, 병원 복도나 옥상 등에 치유정원을 꾸며 식물이 주는 신체 치유 효과를 활용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불교의 삼법인(三法印) 중 하나인 제법무아(諸法無我)다. 세상 만물은 영원하거나 불변하여 그 자체로 독립성을 가진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독립적이고 자기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는 없다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이것이 생(生)하면 저것이 생(生)하고, 이것이 멸(滅)하면 저것이 멸(滅)한다는 연기설(緣起說)과도 일맥상통한다. 이처럼 인간과 자연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요즘 기후변화와 관련, 탄소중립 등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의 비율을 줄이자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대기에 존재하는 이산화탄소 비중은 0.03% 수준이다. 기존 땅속에 갖혀 있던 탄소가 석유, 석탄 등의 연소 과정에서 공기 중으로 탄소가 날아가면서 공기 중의 탄소의 비율이 올라가서 온실 현상을 일으킨다. 사실 지구 전체의 이산화탄소 비율은 질량보존의 법칙에 의거하여 총량은 변함이 없으나 땅속에 갇혀 있던 이산화탄소가 공기 중으로 이동해 온실효과 등을 유발해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화산 등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는 인간의 능력으로 제어할 수 없고 주로 인간이 발생시키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자는 것인데, 이런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실질적인 방법은 포집하거나 화석연료 대신 수소와 같은 대체에너지를 활용할 수도 있지만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나무 등 식물을 많이 심어 그 속에 이산화탄소를 저장하는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 바이츠만 연구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모든 생명체의 0.001%에 불과한 인간이 모든 야생 포유동물의 83%와 식물의 절반을 파괴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생물이 다양해질수록 지구의 생태계는 강해지는 법인데, 닭, 오리 등 가금류는 모든 조류의 70%, 포유류의 60%라는 불균형 상태를 인위적으로 초래했다. 포유동물 가운데 야생에서 서식하는 동물은 4% 정도라고 하니 인간이 자연에 끼친 악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지구온난화 등 기후 위기나 생태 위기는 자연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고, 자연을 통제할 수 있다는 인간의 오만(hubris)가 낳은 결과라 생각한다. 인간과 자연은 둘이 아닌 순환과정으로 연결된 존재임에도 자연에 대한 인간 중심적 이해의 결과다.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더불어 같이 살아가야 하는 대상인 것이다. 당장 이산화탄소를 줄이고 우울감을 줄이는 방법은 자연과 가까이하는 방법만큼 좋은 게 없다. 농촌진흥청의 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식물을 활용한 치유프로그램에서 청소년의 우울감을 39.2%나 줄였다는 결과도 있다. 인간은 죽으면 매장이든, 화장이든 분해되면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나무 등 식물의 에너지로 활용된다.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고 누군가의 몸이 탄소로 변해 어느 나무가 되어 있다. 그래서 더욱 자연을 보는 시각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우리 몸은 물 61.8%, 단백질 16.8%, 지방 1.49%, 질소 3.3%, 칼슘 1.81%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자체 화학 덩어리다. 화장이든 매장이든 몸속의 원소를 공기 중이나 땅속에서 원소로 바뀌고 물이든 원소든 다시 지구 어딘가로 순환된다. 그래서 영원히 순환하기 때문에 그리운 사람이 곁에 없어도 외롭지 않을 수 있고, 우리는 영원히 산다고 생각할 수 있다. 괴테는 자연의 극치는 사랑이라고 했다. 사랑에 의해서만 사람은 자연에 접근할 수 있다고도 했다. 자연과 인간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 사랑을 주고받으며 공존하는 대상이다. 녹색 갈증을 느끼는 것도 그만큼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것이다. 파괴된 자연은 곧 인간성의 파괴를 의미한다. 특히 식물과 인간은 서로가 만들어낸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주고받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만들지 못하는 아미노산은 자연으로부터 얻는다. 이제부터라도 인간이 우월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자연의 소박한 삶 속에서 위대한 자연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