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안 보이는 자금시장 경색…한은 앞세워 돈줄 풀어준다
CP 시장 여전히 불안…"연말·연초 변동성에 총력대응"
채안펀드 5조원 추가 가동...한은도 2.5조 유동성 지원
2023-11-28 이광표 기자
[매일일보 이광표 기자] 한국은행이 사상 첫 6차례 연속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한 가운데 경제·금융 수장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 자리에서 레고랜드 사태와 금리인상 등으로 얼어붙은 자금 시장을 뚫기 위해 금융규제와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는 방침을 내놨다. 또 유동성 확보를 위해 정책지원프로그램 지원도 늘리기로 했다.
28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은행회관에서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금융시장 동향을 점검하고 '50조원+α 시장안정대책'과 각종 후속 조치 이행상황 및 정책방향 등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는 추 부총리 외에 최상목 경제수석,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참석했다.
레고랜드 사태 이후 경색된 자금시장은 10월 23일 발표한 '50조원+α 시장안정대책' 시행 이후 회사채 금리가 지속 하락하는 등 시장 불안이 점차 진정됐지만 단기자금시장을 중심으로 어려움이 잔존하고, 은행권 자금 쏠림 등으로 2금융권 등은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연말까지 주요국 물가지수와 금리 결정 발표 등 주요 이벤트가 남아있고 부동산 경기 부진, 연말 결산 등에 따른 자금수급 변화 등으로 금융시장에 대한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다.
이에 정부가 5조원 규모로 채권시장안정펀드에 대한 2차 캐피탈콜을 실시하는 등 추가 유동성 공급 방안을 내놨다. 자금시장 경색이 완화되지 않는 상황에서 추가 대책을 통해 실질 유동성을 공급하고 시장 안정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던짐으로써 연말과 연초에 나타날 수 있는 고비를 잘 넘겨 보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정부는 12월 국고채 발행 물량을 9조5000억 원에서 3조8000억 원으로 대폭 축소하고,한국전력·한국가스공사 등 공공기관의 채권발행 물량을 줄이고 발행 시기를 분산시켜 채권시장 부담을 줄여주기로 했다. 또 총 20조원 규모로 조성된 채안펀드는 3조원 규모 1차 캐피털콜에 이어 5조원 규모의 2차 추가 캐피탈콜에 나서기로 했다.
특히 한은이 2차 캐피탈콜 출자 금융사에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을 통해 출자금의 50% 이내로 자금을 지원하기로 한 것이 눈에 띈다. 이를 통해 한은이 공급하는 유동성만 최대 2조5000억원에 달하게 된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상임위원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건설업 관련 비우량 회사채와 A2 등급 CP에 대한 추가 지원 방안도 강구하고 있다"면서 "한은이 RP 매입을 통해 유동성 공급을 지원해주기로 하는 등 이번 추가 대책을 마련하는 데 있어 많은 역할을 해줬다"고 평가했다.
정부는 2차 캐피탈콜 출자 금융사의 부담 완화를 위해 다음 달부터 내년 1월까지 세 차례에 나눠 분할출자 방식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자금 블랙홀'로 지목된 한전채와 관련해서도 은행들이 한전 대출에 적극 나서는 등의 노력으로 내년 초면 관련 문제가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기대했다. 은행은 한전이 발행한 채권이 시중자금을 흡수하는 것을 막고 한전에 유동성을 공급해주기 위해 연말까지 2조~3조 원의 대출을 한전에 내어준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또 자회사 간 신용공여 한도도 10%포인트 완화해주기로 했다. 자회사의 다른 자회사에 대한 신용공여 한도는 10%에서 20%로, 전체 신용공여 합계는 20%에서 30%로 높여준다.
권 상임위원은 "지주가 대주주로써 계열사들의 유동성 문제를 책임지라는 뜻으로 정부의 부담도 줄어들 수 있다"면서 "상대적으로 자금에 여유가 있는 대형 금융회사, 기관투자자·법인 등이 적극적으로 시장 안정을 위해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정부는 금융회사들이 추가 자금 지원에 나설 수 있도록 한시적으로 규제도 완화해주기로 했다.
금융위는 지난달 은행 기준 예대율 비율을 6개월간 100%에서 105%로 완화했는데, 이번에는 정부 자금을 재원으로 하는 11종류의 대출을 대출금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대출금에서 정책자금 대출을 제외해주면 은행은 예대율 여력을 확보해 추가 대출 여력이 생긴다.
금융위는 예대율 규제도 완화한다. 이에 따라 은행권은 예대율이 평균적으로 0.6% 감소하는 효과를 보게 된다고 추정했다. 다시 말해 8조5000억 원 가량의 추가 자금 공급 여력이 생기게 되는 셈이다.
금융위는 정부의 은행채 발행 및 수신금리 과당경쟁 자제에 요청에 따라 자금 조달 길이 막힌 은행에 유동성 부담을 완화해줄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다. 아울러 카드사와 캐피탈사 등 여신전문금융회사의 경우 원화 유동성 비율을 현행 100%에서 90%로 10%포인트 낮추고 여신성 자산 대비 PF 익스포져 비율은 30%에서 40%로 높여주기로 했다.
이외에도 금융당국은 은행 간 은행채를 인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4일 은행채 인수 허용 등 은행들이 자금을 시장에서 끌어올 수 있게 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