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멘트‧레미콘에 '업무개시명령'… 노동계 거센 반발
尹 대통령 "노사 법치주의 확고하게 세울 것… 불법과 절대 타협 안해"
업무개시명령, 1차 불응 시 '30일 영업정지', 2차 불응 시 '운송사업 허가취소'
2022-11-29 이소현 기자
[매일일보 이소현 기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이하 화물연대) 총파업이 엿새째 접어든 가운데, 윤석열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하는 초강수를 뒀다. 산업계 피해가 현실화되는 시점에서 강경 대응으로 현안을 돌파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화물연대는 이에 반발하면서 파업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으로, 양측의 강대강 구도는 점차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 尹"파업 행위 타협 없다···노사 법치주의 확고"
윤석열 대통령은 2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더 심각한 위기를 막기 위해 부득이 시멘트 분야의 운송 거부자에 대해 업무 개시 명령을 발동한다"면서 "임기 중에 노사 법치주의를 확고하게 세울 것이며, 불법과는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화물연대 반발과 노정 관계의 경색 우려에도 집권 초기부터 보여온 친기업·반노동 기조를 유지하고, 강경 대응으로 현 상황을 강행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와 화물연대 협상은 전날 처음 진행됐으나, 서로의 입장만 재확인하고 최종 결렬됐다.
소관 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업무개시명령이 발동됨에 따라 이날 오후 국토부·지자체·경찰 등으로 구성된 전국 200여 개 시멘트 운송 업체에 대한 현장조사를 일제히 시행한다. 화물차주의 실제 운송 여부, 운송거부 현황 등을 확인하고 운송업체와 화물차주에게 업무개시명령서를 송달한다.
정부가 시멘트 업계부터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것은 피해가 가장 컸기 때문이다. 전날 기준 시멘트는 평시 대비 5%만 출하됐고, 생산 중단이 임박한 레미콘은 출하량이 20% 수준으로 떨어졌다. 건설현장 250곳은 이에 레미콘 타설이 멈췄다. 시멘트→레미콘→건설현장의 연쇄 셧다운이 시작된 가운데, 이를 운송하는 화물차 벌크시멘트 트레일러(BCT) 등은 대체 수단이 없는 상황이다.
업무개시명령서를 받은 화물차주들은 당일부터 당장 운송을 재개해야 한다. 1차 불응 시 30일 영업정지, 2차 불응 시 운송사업의 허가취소 처분을 내려진다. 현행법상으로는 최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 등 실형도 가능하다.
◇ "화물차주에겐 사실상 계엄령" 화물연대 '삭발 투쟁' 대응
화물연대는 "계엄령에 준하는 명령"이라며 정부 결정에 대해 강력히 반발하는 중이다. 이들은 이날 전국 16개 지역 거점에서 업무개시명령에 반발하는 집회를 열고, 지도부는 삭발 투쟁에 나선다.
화물연대는 이날 "고개를 젓는다면 생계수단을 빼앗아버리겠다는 윤석열 정부에게 화물노동자는 대화의 상대도, 국민도 아닌 모양"이라면서 "윤석열 정부에게 가장 중요한 국민이란 곧 대기업 화주자본을 의미하는 듯하다"고 밝혔다.
화물연대는 그러면서 "윤석열 정부는 '법과 원칙'의 잣대를 일관되기 적용하고, 업무개시명령 엄포를 즉각 중단하라"면서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에 굴하지 않고 투쟁을 이어갈 것"이라고도 했다.
이들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105호의 '강제근로 폐지 협약'을 들어 업무개시명령의 위법성을 문제 삼는 중이다. 한국은 OECD 36개국 중 유일한 미비준 국가로, 이를 준수할 의무는 실제 없지만 업무개시명령이 발동됨에 따라 '노동 후진국' 오명을 쓸 여지가 있다.
이들은 또 헌법 제 15조 '직업 선택의 자유' 등으로 보장된 특정한 일을 하지 않을 권리와 한-EU FTA 제 14.4.3에도 '모든 형태의 강제적 또는 강요에 의한 노동의 철폐 원칙 등도 지적했다.
업무개시명령이 실제 발동된 것은 지난 2004년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 이후 사상 처음이다. 2003년 화물연대 대규모 파업 이후 산업계의 피해를 막기 위해 도입됐으나, 당시 시장 자율성을 침해하고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할 수 있다는 비판을 받으며 사문화됐다.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이 아닌 의료법상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사례는 있다. 2000년 의약분업, 2014년 원격 의료, 2020년 정부 정책 등에 반대하며 의협이 파업에 나섰을 때다. 그때마다 의료계는 위헌 소지가 있고 기본권·근로3권을 침해하는 처분으로 보고 반발했다.
정부와 화물연대는 오는 30일 두 번째 교섭을 진행하지만, 실제 합의를 도출할지는 미지수다. 정부의 이번 대응으로 노정 관계가 경색되면서 어느 한쪽이 대거 출혈을 보고 요구안을 스스로 철회할 때까지 갈등이 계속되는 '힘겨루기' 국면이 펼쳐질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