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고물가 시대 '소비 트렌드' 바뀐다

유통업계, 소비패턴 양극화 따른 전략·예측에 집중 중소기업계, 사업다각화 역량 부족으로 체질 개선에 난항 소상공인, 尹정부 핵심 공약 '디지털 플랫폼 지원' 학수고대

2023-12-11     이용 기자
서울
[매일일보 이용 기자] 고물가 시대를 맞아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이 바뀌면서 산업계가 돌파구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 물가 상승으로 인한 소비심리 악화로 소비 트렌드가 변화하고, 업계 내부의 경쟁이 심화돼 산업계의 체질 개선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제조 및 유통업의 내년 전망치는 어둡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달 '2023 유통산업 전망 세미나'를 통해 "포스트 코로나 이후에도 소비심리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고물가까지 겹치며 유통기업의 수익은 악화되고 경쟁이 심화됐다"고 말했다. 세미나에서 발표자로 나선 김명구 모니터 딜로이트 파트너는 “3高(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시대를 거치며 서비스 효율과 품질을 관리하지 못한 기업들이 낙오하고 있다”면서, “소비자 행동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시장내 경쟁력이 한순간에 상실될 수 있는 시대에는 매장도, 벨류체인도, 서비스모델도 완전하게 고객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기업 위주의 유통가는 이미 고가·저가별로 양극화가 진행된 소비시장에 맞춰 새 전략을 내놨다.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은 내년 설날을 맞아 재활용 포장지를 써서 가격 거품을 줄이고, 제품에 집중한 ‘가성비’ 선물세트를 출시할 계획이다. 가성비 시장이 각광받으며 고가 상품에 대한 니즈는 떨어졌지만, 명품 시장 위축으로는 이어지지 않을 전망이다. 구매 역량을 갖춘 소비자들은 고물가에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신세계, 현대, 롯데백화점은 올해 3분기 명품과 패션 분야 성과를 바탕으로 호실적을 거뒀다. 서정연 신영증권 연구위원은 “내년 상반기까지 물가상승과 소비 위축이 예상돼 음식배달서비스, 가전·가구, 생활용품의 거래액은 감소하겠지만, 식료품, 여행·문화서비스 품목은 성장세가 지속될 것”이라며 “이커머스 각사가 ‘돈 쓰던 전략’에서 ‘돈 버는 전략’으로 선회하고 ‘멤버십 생태계 구축’에 집중할 것”으로 내다봤다. 고물가는 소상공인 및 중소기업계에게도 체질 변화를 강요하고 있지만, 대기업보다 사업다각화 역량이 떨어져 고물가 기조가 이어지는 내년까지 고난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관련 업계도 소비 트렌드가 변화함에 따라 디지털 전환과 새 사업 아이템 확보, 이를 위한 인재 채용이 시급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다만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기존 사업이 정체되면서 자금 마련이 쉽지 않고, 인건비 부담까지 겹쳐 섣불리 새 사업 확보에 나설 수 없는 형편이다. 서울 용산의 도서 출판 업체 대표는 “상품만 잘 만들어내면 되는 시대는 지났다. 우리도 웹툰과 디자인 쪽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싶은데, 종이 가격 상승으로 기존 사업에서 수익을 내기 어려워 새 직원을 뽑을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토로했다. 1인 가구가 증가함에 따라 소비 지형도가 크게 변화하고 있지만, 소상공인계는 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불황이 지속됨에 따라 극한의 합리적 소비를 추구하는 ‘체리슈머’가 대세가 됐다. 이들은 다양한 애플리케이션과 플랫폼을 통해 저렴한 비용으로 상품을 구매한다. 영세 규모의 자영업자들은 자체적인 디지털 전략을 세우지 못한 만큼, 플랫폼 사의 입김에서 벗어나기 힘들어 사실상 고객, 플랫폼사에 이어 병(丙)의 입장이 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서울 중구 인사동의 기념품 판매업자는 “엔데믹이 다가왔지만 이미 소비자들은 비대면 상거래에 익숙해져 소상공인들은 외면받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대선 당시 ‘자영업자와 상인을 위한 디지털 플랫폼 지원’ 공약을 내세웠는데, 관련 업자들은 공약 이행만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