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이재영 기자]정부와 국회가 국내 산업의 구조적인 문제는 방치한 채 땜질 처방으로 순간을 모면하거나 자리싸움만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많이 드는 요즘이다. 화물연대 파업부터 최근 법인세를 두고 예산안을 다투는 국회 상황이 그렇다.
화물연대와 비슷한 사례로 주유소 산업도 도로를 따라 사업소가 많이 들어서면서 경쟁이 심했다. 가격경쟁은 소비자 측면에선 기름값을 낮춰 긍정적이지만 이미 주유소가 과포화된 상황에선 퇴출 문제를 야기했다. 주유소는 가출청소년이나 장애인 등 사회 약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역할도 해왔다. 그래서 셀프주유소가 많아지고 휴업 또는 퇴출 업소가 늘어나자 사회적 문제를 야기했다.
주유소는 그나마 개인자산가들이 많은 편이지만 대부분 영세한 화물운송 종사자는 과잉경쟁의 어려움이 훨씬 커 보인다. 종사자간 소득편차는 매우 크다고 한다. 운송시간을 늘리면 늘릴수록 소득이 많아지는 구조다. 특정 개인이 일감을 독점해 소득을 늘리면 일감을 얻지 못한 경쟁자는 생존을 위해 운임을 낮출 수밖에 없다. 그렇게 과잉경쟁은 화주와 운수사업자가 가격을 후려치기도 쉽게 만들었다. 더 낮은 운임에도 생계를 위해 운송을 멈출 수 없다보니 종사자간 운임 역경매도 벌어진다. 기름값이 오르자 상황은 더 악화됐다.
그러한 시장 구조의 이득을 챙긴 화주는 비용절감을 바탕으로 실적을 올린다. 화주 임직원 입장에서는 전임자가 올렸던 실적이 인사평가 기준이 되니 한번 내려간 비용을 먼저 나서 올릴 순 없다. 적정 운임을 보장해주려는 상생의지가 강한 화주여도 운수사업자가 중간마진을 얼마나 챙기는지 모르니 공연히 배려할 수도 없다. 그렇게 화주와 운수사업자, 운송 종사자는 각자의 처지에서만 급급하다.
화물연대 파업으로 산업 피해가 커지고 민생까지 위협받자 정부는 강경대처했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오르는 것을 보면 강경대처를 잘 했다고 보는 국민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파업이 중단됐어도 문제는 여전하다. 과잉경쟁과 과로, 사고로 이어지는 악순환은 그대로다. 화물운송 운전자의 졸음운전 사고는 당사자의 비극을 넘어 충돌사고를 겪는 불특정 운전자와 그 가정의 불행으로 이어진다. 즉, 국민 전체가 늘 리스크에 노출돼 있다고 봐야 한다.
파업 문제를 해소하려면 과잉경쟁이 벌어지는 산업구조를 근본적으로 고쳐야 한다. 초기엔 비용이 오르겠지만 운송 종사자만 과잉경쟁하는 상황이 개선되면 산업은 적정 비용구조에 점점 적응해 갈 것이다. 구조와 시스템을 바꾸는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도 국회도 파업 상황이 벌어질 때에만 대처한다. 하지만 기업도 생존을 위해 사업구조를 바꾸듯이 사회도 바뀌어야 한다. 문제를 방치하고 상황 대처만으로 후세대에 짐을 떠넘기는 행태를 그만 멈춰야 한다.
법인세 인하 문제를 다투며 국회가 예산안 처리를 미루고 있다. 경제가 위태로운 시기에 법인세 쟁점을 들고 나온 여당도, 물러서지 않는 야당도 태평해 보인다. 예산안을 미뤄도 국회의원 생계 문제와 무관하기 때문이 아닐까 의심할 수밖에 없다. 내년 기업들은 글로벌 경기 부진 때문에 투자 축소를 예고하고 있다. 게다가 글로벌 공급망 보호주의 인센티브 정책 때문에 해외 투자를 늘리는 게 기업으로선 다급하다. 내년 법인세를 내려도 당장 국내 투자 확대 유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에서 국회가 대치하는 모습이 선거를 위한 복선이 아닌지 안타까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