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공부의 온‧오프 스위치 ‘감정’
[매일일보] "아이 스스로 공부하는 힘을 키우는 법 없을까요", "입만 열면 귀찮다고 하거나 알아서 한다는 아이를 보면 스트레스받고 힘들어요. 화를 안 내고 싶은데 잘 안돼요"
아이 공부시키기가 어렵다고 호소하는 학부모의 '학습코칭' 상담 단골 주제다. 의사 결정의 대부분이 이성이 아닌 감정에 따른다는 것이 최근 인지심리학과 뇌과학 등의 연구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좋고, 싫다는 감정적 선택의 결과를 이성적 논리로 채운다는 것이다.
행동설계를 다룬 도서 ‘스위치’의 저자들은 이성은 '기수', 감정은 '코끼리'로 비유한다. 겉으로 보면 기수가 고삐를 쥐고 코끼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코끼리의 힘이 더 강력해 기수를 압도한다.
변화하려면 코끼리에게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그다음 기수에게 방향과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순서다. 특히 사춘기 자녀를 움직이려면 감정에 집중해야 한다. 사춘기엔 감정을 느끼는 편도체는 활성화되고,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전전두엽 피질은 상대적으로 덜 발달했기 때문이다.
공부 잘하는 방법으로 지식과 인지능력만이 강조되어 왔다. 하지만 주요 과목 지식을 아무리 구겨 넣으려 해도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없으면 종지에 수돗물 담기다. 물의 속도가 셀수록 물은 더 튕겨 담기지 않는다.
이젠 소홀하게 생각했던 감정과 공부 마음에 집중해야 한다. 공부 그릇을 종지에서 국수 그릇으로 키우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감정, 곧 공부 마음이다. 그릇을 키운 후 지식을 넣으면 된다.
감정 스위치를 활용해 학습효과를 높이는 방법은 무엇일까. 공부를 왜 하는지에 대한 동기부여와 긍정적인 자기인식, 성장 마인드셋, 공부 자신감이 피어나도록 돕는 것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모든 과정에 부모가 슬기롭게 개입하고 끌어내기란 사실 쉽지 않다. 도움을 받아야 할 부분은 전문가에게 의뢰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대신 부모는 자녀의 자존감에 집중한다. 자존감이 공부 마음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녀가 자신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도록 마음을 읽어준다. 결과가 어떻든 '사랑받을 만한 존재'라고 믿을 수 있도록 행동한다.
아이에게 '그랬구나', '좋았겠다', '속상했겠다'와 같이 호응하며 적극적으로 들어주는 것은 물론, 실수하고 조금 늦어도 기다려주는 것, 꼭 안아주는 것, 화를 내고 짜증낼 때에도 공감해주는 것과 같은 긍정적 경험이 쌓일 때 아이의 자존감은 높아진다.
반대로 부모의 한숨에 눌리고 짜증에 길든 아이의 자존감은 바닥을 친다. 공부 이유를 모르고 할 자신이 없는데 지식만을 넣어주면 결국 소진될 뿐이다. 자존감이 낮아지면 포기가 빨라진다. 아직 빨간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늦지 않았다. 변화의 기회를 낚아챌 수 있다.
사춘기 딸이 저녁에 잔뜩 짜증이 났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 기분이 상한다며 입이 튀어나와서 동생도 밉고 화가 난다고 씩씩거린다. 미뤄둔 숙제는 해야 하는데, 하기는 귀찮고, 짜증은 나는데 짜증낼 곳은 없으니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화가 났지만, 잠시 멈춰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봤다. "저녁 먹으니 나른하고 동생 노는 거 보니 부럽고, 놀고 싶은데 숙제는 해야 하니까 엄마도 그럴 땐 좀 짜증나더라. 포기하고 놀아버리면 되는데 해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거잖아? 엄마는 그 마음이 고맙네"라고 말을 건네자 아이가 배시시 웃는다. 마음이 풀린 아이가 숙제하기 시작했다.
감정이 요동치는 사춘기라면 감정을 수용하는 경험이 중요하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존감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자존감은 공부 동기가 되고 엔진이 된다. 공부하기 싫은 마음이 들고 자신감이 떨어지는 순간에도 이겨내고 공부에 다시 집중하게 한다. 아이에게 지식을 더 많이 넣어 주기 전에, 지식을 넣을 그릇을 먼저 만들어 주면 어떨까. 그것이 더 큰 변화의 원동력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