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동인 칼럼] 껍데기만 문이과 통합 수능

2023-12-22     매일일보 기자
원동인
통합수능 2년 차를 맞은 올해 수능에서도 이과생들의 약진은 변함없었다. 문과생들은 수학의 불리한 점수를 국어로 보완했지만 올해 수능에서는 이과 상위권 학생들이 수학은 물론 국어에서도 1등급을 싹쓸이했다고 한다. 2023 수능에서 수학 영역은 미적분(이과생) 표준점수 최고점이 145점, 확률과 통계 최고점이 142점으로 3점 차가 났다. 같은 만점을 받아도 이과생들이 선택하는 미적분 최고점수가 문과생이 대부분 응시하는 확률과 통계 만점보다 표준점수가 3점이 높다. 현실은 이보다 훨씬 심각하다. 수학 영역 1등급(표준점수 133점)은 국어 영역 1등급(표준점수가 126점)보다 표준점수가 무려 7점이 높다. 등급이 내려갈수록 국어와 수학의 표준점수는 더욱 커진다. 아! 역시 복잡하다. 왜 이런 복잡한 점수 체계가 나오는 것일까. 수험생 부모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이해하기가 어렵다. 통합수능이라면 문·이과 구분 없이 공통시험을 치르게 하는 게 상식일 텐데 도입한 것은 선택과목제다. 과목을 실질적으로 통합한 게 아니라 선택과목으로 문·이과를 그대로 놔둔 것이다. 문·이과 구분 없이 보던 국어는 공통과목(독서+문학)에 언어와 매체, 화법과 작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이전에 가·나형으로 구분됐던 수학은 공통과목(수Ⅰ+수Ⅱ)에 미적분, 기하, 확률과 통계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문제는 선택과목에 따라 시험 문제가 다른데 성적은 통합해서 산출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공통과목 평균 점수가 높은 선택과목 집단에 '보상'을 줘 표준점수를 산출하는 조정법을 적용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같은 점수를 받더라도 이과생이 주로 선택하는 '미적분'의 표준점수가 문과생이 주로 치는 '확률과 통계'보다 높게 나타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수능에서 수학을 잘 친 학생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구조다. 수학 1등급은 이과생들이 거의 독차지한다. 국어도 표준점수 최고점(원점수가 만점인 학생의 표준점수)은 언어와 매체(이과생 선호)를 선택한 경우 134점, 화법과작문을 선택한 경우 130점으로 4점 차가 난다. 현재의 입시 구조는 이과의 문과 교차 지원만 허용한 불공정한 구조이다. 이는 주요 대학들이 의학·이공계열 지원 시 미적분·기하나 과학탐구 2과목을 응시하도록 못 박고, 인문사회계열 학과에는 진입 장벽을 두지 않은 탓이다. 엄연한 인문계 차별이다. 이런 차별적 조건 때문에 이과생들이 높은 수학 표준점수를 무기 삼아 인문계 학과에 지원하는 '문과 침공' 현상이 가능해진 것이다. 지난해 서울대 정시모집에서 인문·사회계열 최초 합격자 중 이과생은 44%에 달했다. 교육부와 대학 간 엇박자로 문·이과 통합수능은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문이과 통합으로 보이지 않는다. 사실상 실패한 것이다. 이번에 또다시 교육 개혁을 한다고 한다. 어설프게 하려면 하지 말지 바란다. 고민하고 이수 저수를 두면 사교육비만 늘어날 뿐이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