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의 소설 제목이다. 인간의 결핍을 욕망으로 대체하는 소설은 가벼운 즉 자유로운 육체와 무거운 즉 진실한 영혼을 성찰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이다. 물론 내용은 더 심오하고 어렵다. 그런데 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이가 떠오른다. 슬프게도 '일인지상 만인지하(一个的基础上 萬人以下)'라 할 수 있는 국무총리다.
그런데 최근 한덕수 총리의 언행을 보면 그야말로 가볍기 그지없다. 지난 19일 한 총리는 서울 이태원 참사 희생자 시민분향소를 찾았다. 하지만 유족 측의 거부로 30초만에 발길을 돌렸다. 게다가 한 총리를 포함한 일행은 돌아오는 길에 무단횡단을 했다. 차가 지나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총리 일행은 빨간불 상태의 건널목을 거리낌없이 건넜다. 21일에는 이 사건과 관련해 국민신문고에 '한덕수 국무총리 도로교통법 위반' 내용이 올라왔다.
우선 국무총리로서 시민 분향소를 찾았으면, 유족들의 반대가 아무리 심하다 해도 30초 머무를 것이 아니라 30분이든 300분이든 어떻게든 설득을 해서 만났어야 했다. 설사 만남이 불발되더라도 그런 시도는 충분히 했어야 했다. 내가 국무총리인데 만남을 거부하다니 하고 30초만에 등을 돌려서는 안됐다는 말이다. 다음 일정이 있다 해도 그리해선 안됐다. 마치 7살 아이처럼 토라져서 가는 듯한 모습을 보일 게 아니라는 말이다.
창피하다.
물론 총리실은 설명자료를 내놓고 한 총리가 현장 근무 중이던 용산경찰서 경찰관의 지시에 따라 횡단보도를 건넜다고 설명했다.
앞서 시민분향소를 예고없이 방문한 데 대해서도 한 총리는 "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냥 가고싶었다고 말할 내용이 아니다. 사적인 마음이 읽히기 때문이다. 최소한 한 국가의 국무총리라면 정부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그의 일정은 모두 공적인 영역에 속한다. 국무총리 방문은 정부의 대표자로서 진심어린 사과와 함께 유족들을 위로하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책 마련을 약속하는 자리로서의 성격을 가져야 했다.
사실 한 두 번이 아니다. 한 총리는 이태원 참사 당시 생존하고도 극단적 선택을 한 10대에 대해 "본인이 좀 더 굳건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것 역시 사건의 내용과 진실을 깊이 이해했다기 보다 단순히 비쳐지는 내용만으로 모든 책임을 그런 선택을 한 당사자에 돌리는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공감 능력 제로라는 힐난까지 이어졌다.
사실 이태원 참사를 두고 이어진 여권 인사들의 막말이나 정부 관계자들의 안이한 인식이 문제 된 적은 한 두 번이 아니다. 거기에 국무총리까지 한 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한 총리의 말과 행동은 참사를 두고 '시체팔이'라느니, '자식을 팔아 한 몫을 챙기려 한다'느니, '나라 구하다 죽었냐'느니 하는 막말과 다를바가 없다. 그냥 가고 싶어서 간 현장에서 30초만에 돌아서며 급하게 무단횡단까지 하는 국무총리의 모습은 전혀 국무총리스럽지 않다.
각각의 이유로 수많은 젊은 청춘들이 비극을 맞이 한 사건이 이태원 참사다. 당시 현장에 국가는 없었다. 분명 정부의 책임이 크다.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참사다. 그렇기에 더더욱 참사를 바라보는 인식과 시선의 가벼움을 국민들이 느끼게 해서는 안된다. 더구나 국무총리라면 더 그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