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영업익 반토막…유동성 축소에 내년 전망 더 어두워
업황 부진 속 5개 대형사 영업이익 전년대비 48% '뚝'
5곳 달했던 '1조클럽' 올해는 전무..."단기 회복 어려워"
2023-12-25 이광표 기자
[매일일보 이광표 기자] 증시 부진 여파로 증권사들의 실적이 곤두박질 치면서, 올해는 '연간 영업이익 1조원 클럽'에 가입하는 증권사가 전무할 것으로 전망된다. 증시가 뜨겁던 지난해에는 '1조 클럽'만 5곳에 달했지만, 올해는 형편이 달라졌다. 중소 증권사들은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업계에서는 내년에도 자본시장 업황이 부진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실적 회복세가 더딜 수도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25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대형 상장 증권사 5곳(미래에셋증권⋅한국금융지주⋅NH투자증권⋅삼성증권⋅키움증권)의 올해 연간 영업이익 컨센서스(업계 평균 추정치)는 3조5573억원에 그쳤다. 지난해 영업이익(6조8180억원)보다 47.82% 급감한 수치다.
이들 증권사 중 올해 연간 영업이익 컨센서스가 가장 큰 곳은 미래에셋증권으로 9790억원이다. 작년 영업이익(1조4855억원)보다 34%나 줄어든 수치다. 이어 △메리츠증권(9470억원) △한국금융지주(한국투자증권 포함·8644억원) △삼성증권(6954억원) △키움증권(6827억원) △NH투자증권(5165억원) 순이다.
지난해 증시 호황에 힘입어 △한국금융지주 1조5210억원 △삼성증권 1조3087억원 △NH투자증권 1조2939억원 △키움증권 1조2089억원 등 5개 사가 1조 클럽에 가입한 것과 대비된다.
글로벌 긴축으로 증시가 부진하면서 증권사들의 실적이 악화된 점이 뼈 아팠다. 투자자 이탈로 인한 위탁매매 수수료 감소, IB(기업금융) 부문 실적 악화 등 악재가 겹쳤다.
주식시장의 거래액이 줄어들면서 증권사들이 벌어들이는 중개 수수료가 낮아진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예컨대 지난 11월 하루 평균 코스피 매수금액은 8조7000억원이었는데, 작년 11월(11조7000억원)보다 26% 떨어진 것이다. 글로벌 기준금리 상승 여파로 채권 금리도 함께 상승(채권 가격 하락)하면서 증권사 보유 채권의 가치가 줄어든 것도 실적에 부정적 영향을 줬다.
레고랜드 사태가 촉발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유동성 위기도 증권사에는 악재였다. 증권사는 부동산 PF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에 대해 지급보증을 서주면서 수수료를 받는데, 자금시장이 경색되며 ABCP 발행이 줄어들자 이 수수료가 감소한 것이다. 또 발행된 ABCP의 판매량도 줄어들며 증권사가 챙기는 판매 수수료 역시 줄어들었다.
반면 메리츠증권이 불안한 업황 속에서도 리스크 관리 하에 IB, 세일즈&트레이딩 부문 등에서 큰 이익을 거두면서 업계 선두로 올라 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올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은 8234억원으로, 4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1970억원)를 달성하면 연간 영업이익은 1조204억원이 된다.
증권업에 대한 전망도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면서 국내 신용평가사들에서도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한국신용평가가 최근 발표한 2023년 산업 전망에 따르면 증권업의 등급 전망을 '부정적'이라고 평가했으며, 금리 급등과 증시 위축 등으로 인한 비우호적인 환경이 이어져 이익창출력이 약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여기에 부동산 경기 침체, 기업 이익 감소에 건전성 저하 등으로 IB부문 실적 악화를 예상했다. 이 외에도 한국기업평가와 NICE신용평가 역시 증권업에 대해 부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전문가들은 올해 단기자금 시장 위기가 부동산 실물시장으로 옮겨갈 경우 증권사의 내년 실적도 위축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내년 증시가 올해보다 나아진다고 가정하면 중개 수수료는 증가할 수 있다"면서도 "내년 부동산 실물시장이 경색되면 대형 개발사업 자체가 줄어들어 올해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닥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유동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내년에는 기준금리 인상 속도 완화와 더불어 주식 시장의 반등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올해보다는 좀 더 나은 실적이 기대된다"라면서도 "지난 5년간 부동산 PF 사업이 증권사들의 빠른 성장세에 기여했으나, 조달 비용 상승과 부동산 시장 조정 등으로 인해 앞으로는 투자보다 리스크 관리에 무게를 두고 있는 만큼 IB 수수료 손익의 감소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올해 시장을 관통한 악재가 어느 정도 정리되면 내년에는 실적이 개선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정태준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긴축이 끝나가고 있고 이에 따라 시장금리가 하락하면 올해 내내 이슈였던 채권평가손실이 이익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부동산 익스포저도 손실을 확정하고 나면 추가 우려가 소멸하기 때문에 내년에는 실적 개선이 나타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