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러시아 전쟁 끝나 간다

2023-12-27     이재영 기자
[매일일보 이재영 기자]새해 국제 가전전시회 CES에는 농기계 회사 대표가 기조연설을 한다. 무인 농기계를 개발한 혁신 기업이긴 하지만 CES와는 어울리지 않다. 자동차를 넘어 농기계까지 CES가 지평을 넓힌 데는 이유가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후 이들 지역 식량 수출이 막히며 수급문제가 커졌다. 내년 경기침체까지 불어 닥쳐 농업과 식량 문제가 화두가 될 전망이다. CES도 그 점을 놓치지 않는다. 세계 경제를 흔드는 전쟁은 막바지에 이른 감이 든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확실한 우위를 점하지 못하면서도 전쟁을 끌었던 동력은 자원 수출이다. 러시아산 가스와 석유 수출은 물량이 감소했지만 가격이 크게 올라 많은 이익을 챙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군수물자를 조달하는 자금줄이 됐다. 그 자금줄이 점점 막힌다. 독일이 최근 액화천연가스(LNG) 터미널 가동에 들어갔다. 러시아로부터 LNG 의존도를 줄이는 데 필요한 조치다. 독일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LNG터미널 착공에 들어가 순식간에 준공까지 이르렀다. 이로써 독일은 러시아 외 다른 나라에서 LNG를 수입할 수 있다. 독일 총리는 “푸틴이 가스를 차단해 협박했지만 우리는 당하지 않는다”라며 탈러 의지를 다졌다. 독일을 비롯해 각국이 LNG 비중을 줄이기 위해 재생에너지 개발에도 속도를 높였다. 독일은 부총리가 ‘눈물의 골짜기를 넘었다’고까지 표현했다. 악착같이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자했던 시도가 수확을 보인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파산 위기에 몰렸던 독일 가스 기업은 국유화 단계를 밟고 있다. 그렇게 단기적으로 수급 부족에 따른 이익을 챙겼던 러시아는 점점 유리한 입지에서 물러나게 됐다. 타격을 입었던 기업들이 러시아로부터 단절 가능한 대책을 구현하기 시작했다. 러시아로서는 전쟁이 유리하게 끝나도 유럽에 팔 자원 수출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대표적으로 유럽연합이 내년 2월부터 LNG 가격상한제를 시행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키고 그로 인한 가스가격 상승 이익을 실컷 챙기고 있지만 유럽이 제동을 건 것이다. 일정 수준 이상 가스 수입 가격이 오르면 제도가 발동된다. 전쟁 발발 후 가스 수출이 줄었다며 우는 시늉을 했던 러시아로서는 실질적으로 챙길 수 있는 이득이 한정될 이슈다. 구체적으로 내년 2월15일 시행된다고 한다. 러시아와 유럽 내 우방국 사이에 어떤 협상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일부 국가의 반대하는 주장도 있다. 그럼에도 유럽 회원국이 상한제를 두는 데 최종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그만큼 전쟁이 너무 길었고 그로 인한 피해가 누적된 탓이다. 우리나라도 전 정부로부터 탈원전을 선언했듯이 각국이 LNG 가격 상승으로 인한 전력구매 비용을 완충하기 위해 원전으로 돌아가는 움직임도 뚜렷하다. 원전의 위험에도 애써 환경 부작용이 덜한 장점을 강조하면서다. 결과적으로 러시아가 군수물자를 조달하거나 혹은 전쟁으로 재미를 보는 수단이 점점 막히고 있다. 혹은 전쟁 이후에도 러시아가 고립될 글로벌 공급망 구조가 조성돼 가는 양상이다. 푸틴이 핵을 운운하는 것은 마지막 자존심인 듯하다. 심지어 암 치료 운운하는 것은 러시아가 패전국가 이미지만은 피하려는 출구전략이 아닐까 싶다. 러시아는 핵으로 위협하지만 그만큼 정상적인 전쟁으로는 이길 확률이 없다는 것과 같다. 입식타격 경기에서 실격패를 당할 주짓수를 쓰려는 식이다. 고통받는 우크라이나 국민을 위해, 인플레와 경기침체 등 간접 피해를 겪는 우리에게도 비열한 경제논리로 연명해온 전쟁은 멈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