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수 칼럼] 민심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국민의힘

2023-12-28     매일일보 기자
이동수
지난 26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가 차기 전당대회 날짜를 내년 3월 8일로 확정했다. 이로써 당권을 놓고 벌어지는 레이스가 막을 올렸다. 특히 이번 당 지도부는 2024년 4월 예정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공천권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그 경쟁이 평소보다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이번 전당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아무래도 기존 '당원투표 70%·일반국민 여론조사 30%'였던 전당대회 룰을 '당원투표 100%'로 개정했다는 것이다. 본 경선 전 예비경선도 당원투표만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전에 없던 결선투표도 도입되었다. 역선택이나 후보의 난립으로 경쟁력 낮은 후보가 당선되는 일을 막겠다는 취지다. 이 모든 변화가 '윤심(尹心·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유흥수 선거관리위원장은 "특정 후보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반발하고 있다. 물론 그의 말대로 이번 전대 룰 개정이 특정인의 당선을 염두에 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지도부가 '유승민은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도 분명해 보인다. 실제로 각종 여론조사에서 유승민 전 의원이 상당히 앞서는 결과가 나오자 당내에서는 "당심 반영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결선투표제를 도입한 대목에선 '반드시 친윤 후보를 당대표에 앉혀야겠다'는 결의가 엿보이기까지 한다. 현재 국민의힘은 한 지붕 두 가족이다. 창당 이래 당내에서 60대 이상 당원의 지지를 얻는 후보와 2030 청년 및 중도층의 지지를 얻는 후보 사이의 갈등이 끊임없이 빚어졌다. 지난해 4·7재보궐 선거와 대선 경선, 그리고 올해 있었던 경기도지사 경선은 그 대표적 전장이었다. 인물에 따라 정치적 상황에 따라 결과는 달랐지만, 확실한 건 이 두 집단의 경쟁이 나름의 흥행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때로는 대립이 첨예해지며 지지율 하락의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그 덕분에 자유한국당 시절 보기 힘들었던 중도 확장을 꾀할 수 있었다. '당심 100%'라는 새로운 전대 룰은 두 세력 간 균형이 무너졌음을 상징적으로 의미한다. 동시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국민의힘 지도부 스스로가 가른 격이기도 하다. 차라리 당헌·당규에 '유승민은 당대표가 될 수 없다'고 명시하면 될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여론조사 반영을 없앰으로써 민심을 수용할 여지를 완전히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열성 당원과 국민의 정서가 크게 다르지 않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심에만 맹목적으로 기대는 정당이 민심에도 부응할 것이라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다음 총선 결과는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번 전대 룰 개정으로 국민의힘은 외연을 넓히는 길목에 스스로 장애물을 놓았다는 점이다.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다가 외연 확장의 기회를 놓치고 패배한 들, 선거는 이미 끝난 후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승민이 안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정당이라면, 후보 시절 윤석열 대통령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런 정신머리부터 바꾸지 않는 당은 없어지는 게 낫다"고 개탄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