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최근 한반도에 찬 공기 폭탄을 투하한 ‘더블 블로킹(우랄 블로킹 + 오호츠크 블로킹) 현상’으로 1973년 전국적인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이번 한파는 50번의 겨울 중 역대 10위 안에 들 정도로 강력하다. 당연히 춥고도 험한 ‘냉동고 한파’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보다 혹독한 ‘경기 한파’가 서민경제 특히 취약계층의 삶을 꽁꽁 얼어붙게 옥죄고 있다. 세밑 경기가 가파르게 하강할 조짐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기 때문이다.
올해 물가 상승률이 5.1%를 기록했다. 외환위기 때인 1998년(7.5%) 이후 24년 만에 최고치다. 지난 12월 30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12월 및 연간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올해 소비자물가지수는 107.71(2020년=100)로 1년 전보다 5.1% 올랐다. 2011년 이후 연간 물가 상승 폭은 3%를 넘긴 적이 없었는데, 지난해 2.5%로 튀어 오르더니 올해 큰 폭으로 뛴 것이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7.5%를 찍은 이래 2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지난 6월(6.0%)과 7월(6.3%) 6%대까지 치솟았던 물가상승률은 8월(5.7%), 9월(5.6%) 두 달 연속 둔화했다가 10월(5.7%) 다시 확대됐다. 11월(5.0%)에는 상승 폭이 크게 줄었지만, 전월과 같은 흐름을 유지하며 8개월째 5%를 넘어섰다. 내년 초에도 이런 추세가 유지될 것으로 한국은행은 예상했다. 특히 폭등한 외식비, 가공식품 물가는 오르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특성이 있다. 서민들이 느끼는 물가 부담은 상승률보다 더 높을 것은 너무나 자명(自明)하다.
문제의 심각성은 새해 벽두부터 전기·가스·대중교통 등 공공요금마저 무더기로 줄줄이 인상된다. 더욱이 급등한 국제 유가,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을 반영하지 않고 억눌러 온 공공요금 인상같이 물가 불안을 부추길 악요인(惡要因)들이 곳곳에 산적해 있다. 이럴 때일수록 가장 큰 고통을 받는 계층은 당연히 서민들 특히 취약계층이 아닐 수 없다. 날로 늘어만 가는 서민 생계비 부담을 덜어주는 데 정부가 관심을 더 기울이고 더 촘촘히 살펴야 하는 이유다. 한국경제는 이미 경기침체(Economic stagnation)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이 중첩된 역대급 경제 한파에 진입했다. 취약계층의 생활고는 더욱 깊어지고, 기업의 줄파산까지도 나타날 수 있는 최악의 위기 상황이다. 긴축 기조 고금리 장기화에 대비한 취약계층 지원과 확대가 필요하다.
우선 내년 1월 1일부터 전기요금이 평균 9.5% 인상된다. 역대 최고 상승 폭이다. 4인 가구 기준으로 월평균 4,022원가량 전기요금을 더 내야 한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은 지난 12월 30일 “올해 상승한 연료비 일부와 기후환경 비용을 반영해 전기요금을 kWh(킬로와트시) 당 13.1원 인상한다.”라고 밝혔다. 정부의 한전 경영 정상화 방안에 따르면 내년 전기요금 인상 적정액은 ㎾h(킬로와트시) 당 51.6원이다. 올해 인상액이 ㎾h 당 19.3원인 점을 고려하면 2.673배나 된다. 한국전력의 누적 적자는 올해 약 30조 원까지 늘어났고 주택용 전기요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저렴하며 지금까지 한전이 발행해 온 전력채 중 상환해야 할 금액은 무려 67조3,000억 원에 이른다. 이는 단계적으로 추가 인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그뿐만 아니라 버스·지하철 요금도 지역에 따라 20~30% 오른다. 강원도는 1,400원인 시내버스 요금을 1월부터 1,700원으로 올린다. 대구시도 버스와 도시철도 요금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서울시는 내년 4월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 요금을 올릴 계획이다. 카드 기준으로 지하철 요금은 1,250원에서 1,550원으로 300원, 시내버스 요금은 1,200원에서 1,500원으로 300원 오른다. 시간당 1,000원인 공공자전거 ‘따릉이’ 가격도 2배로 올리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가스요금의 경우 동절기 난방비 부담, 전기요금 인상 등을 감안해 1분기에는 요금을 동결하고, 2분기 이후 요금 인상 여부 등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가스공사의 민수용 미수금이 2022년까지 약 9조원에 달하는 등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인상 시기의 문제일 뿐 인상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전방위 물가 압박이 내년에도 계속된다는 말이다.
통계청이 지난 12월 29일 발표한 ‘11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현재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경기 동행지수 순환변동치가 전달보다 0.7포인트나 하락했다. 이는 코로나19 첫해인 2020년 5월 -0.8포인트 이후 30개월 만에 가장 큰 하락 폭이다. 그동안 경기 선행지수가 4개월 연속 하락했음에도 동행지수는 오름세를 유지해 왔는데 이번에 하락 전환한 것이다. 생산과 투자 둔화 추세가 이어진 데다 소비 감소 폭이 커진 탓이다. 경기둔화 우려가 증대하는 상황에서 동행지수 순환변동치가 하락 전환한 것은 경기가 변곡점에 다다른 것 아니냐는 해석의 여지가 없지 않다. 문제는 이런 추세가 단기간에 끝나기 어렵다는 점이다. 세계 경제 둔화와 반도체 경기 급랭, 금리 상승 등이 맞물리면서 수출과 투자 여건이 악화하고 소비마저 제약받고 있는 탓이다.
내년 경제 성장률은 1.6%에 그치고, 수출은 올해보다 4.5% 감소하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5.1%에서 내년 3.5%로 둔화하고 신규 고용도 올해보다 88% 급감을 전망하며 올해 220억 달러 흑자를 기록한 경상수지는 내년에도 210억 달러로 흑자 폭이 소폭 축소될 것으로 정부는 내다봤다. 설비투자는 2.8%, 건설투자는 0.4% 각각 감소하며 올해에 이어 부진할 것으로 예상했다. 대외 불확실성 확대, 부동산 경기 위축 등이 악재로 꼽히고 있다. 특히 내년에는 고용 사정이 극히 좋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올해 81만 명이었던 취업자 증가 수가 내년에는 8분의 1 수준인 10만 명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고물가·고금리가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고용마저 위축되면 가계의 소비 여력은 더 떨어질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다소 안정세를 찾은 국제유가나 원자재 가격도 우크라이나 전황, ‘제로 코로나’ 종료로 인한 중국 에너지 수요 변화에 따라 언제든 다시 요동쳐 물가를 앙등시키는 동인으로 작동될 수 있다. 물가 상승은 가계의 실질소득 감소로 이어지고, 특히 공공요금 인상은 서민들 삶을 더욱 궁핍하게 한다. 올해 기준금리를 급격히 끌어올린 한국은행은 높은 물가를 잡기 위해 내년에도 금리 인상을 계속 이어갈 것이 분명하다. 급격한 외자 유출을 막기 위해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와 유럽중앙은행(ECB)의 추가 금리 인상에 발을 맞출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모든 요인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서민들 살림살이 특히 취약계층의 삶을 궁핍하고 팍팍하게 할 수밖에 없다.
본격화하기 시작한 글로벌 경기침체, 고물가·고금리로 인한 내수 침체는 일반 가계의 삶을 더욱 팍팍하게 만들 것이다. 콜린스 영어사전이 올해의 낱말로 꼽은 ‘퍼머크라이시스(Perma-crisis │ 영구적 위기) 시대’가 오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어렵사리 국회를 통과한 2023년도 예산안은 서민 생계비 부담을 경감하는 방안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유례없이 혹독한 겨울을 나기엔 턱없이 부족한 예산이다. 예컨대, 연간 19만5천 원을 지급하는 에너지바우처는 저소득 취약계층 약 86만 가구에, 그리고 대중교통비를 최대 30% 절감할 수 있는 알뜰교통카드는 64만 명에게 혜택이 주어질 뿐이다. 예산안이 경기 전망이 나빠지기 전인 지난 8월에 마련된 점을 고려해 예비비를 사용해서라도 필수 생계비 지원의 대상과 폭을 늘리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강구해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에너지와 교통 등 필수 서비스에 취약계층이 결코 소외되는 일이 없도록 실질적인 지원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더불어 우리 사회의 에너지 소비 구조를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이번 인상에도 한국의 전기요금은 외국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주택용 전기요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5개국 중 가장 저렴하다. 산업용 요금도 평균보다 낮은 수준이다. 전력 소비가 10% 줄면 연간 에너지 수입액은 15조 원 줄어든다. 전기요금 누진제를 확대·강화하고, 가계와 기업 등 경제 주체들이 에너지 절약에 자발적·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새해에도 인플레와의 전쟁은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된다. 취약계층의 한계상황을 살피고 돌봐야 한다. 정부와 기업과 국민 모두 신발 끈을 풀어선 결단코 안 된다.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연합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