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개입에 '5% 예금' 실종…예대차 다시 키운 '오락가락 규제'
수신경쟁 자제령에 예금금리 '뚝뚝' 대출금리만 '쑥쑥'
"정부 '두더지 잡기'식 금리 개입이 시장 왜곡 부추겨"
2023-01-09 이광표 기자
[매일일보 이광표 기자] 지난해까지만 해도 5%를 웃돌던 주요 시중은행의 예금금리가 연 4%대로 낮아졌다. 반면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는 14년 만에 연 8% 선을 돌파하는 등 대출금리만 치솟고 있다. 연초부터 예대금리차가 다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선 정부의 지속적인 금리 개입이 이같은 현상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금금리가 내려간 것도 금융당국의 '수신 경쟁 자제령'이 배경이 됐다.
대출금리가 오르자 금융당국은 이번에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대출 금리 추이를 점검하는 등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고 밝히면서다. 은행에 ‘수신 경쟁 자제’를 주문하며 예금 금리 인상을 억제한 사이 대출 금리는 계속 오르며 "은행만 배불리고 있다"고 있다는 불만이 커지자 다시 개입에 나선 것이다.
9일 은행연합회 소비자포털을 보면,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등 5대 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연 4.00∼4.80% 수준이다. 신규 고객에게 연 1% 우대 금리를 적용해 연 4.80% 금리를 주는 ‘우리 첫거래 우대 정기예금’을 제외하면 우리은행의 ‘WON플러스예금’이 연 4.36%로 가장 높다. 이 상품은 지난해 11월14일만 해도 연 5.18%의 금리를 제공했는데, 불과 두 달여 만에 금리가 0.82%포인트 내려갔다. 연 5% 안팎의 금리를 주던 다른 은행의 예금상품 금리도 대부분 연 4% 초반대로 내려갔다.
은행들이 예금금리를 낮추기 시작한 건 지난해 11월24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인상된 뒤, 금융당국이 시중은행에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수신금리를 올리지 말라는 메시지를 낸 뒤부터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11월 25일 “금융권의 과도한 자금 확보 경쟁은 금융시장 안정에 교란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과당 경쟁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그 전날 “수신 금리 과당 경쟁에 따른 자금 쏠림이 최소화되도록 관리·감독을 강화해 달라”고 했다.
금융당국이 예금금리 상승에 제동을 걸었던 이유는 시중 자금이 예금으로 몰리며 저축은행 등 제 2금융권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데다 예·적금 금리가 주담대 변동금리 등의 준거금리가 되는 자금조달지수(코픽스)에 반영돼 대출금리를 끌어올리는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새해 들어 일부 시중은행이 예금금리는 낮춰놓고 대출금리만 올린 게 발단이 됐다. 은행권에 따르면, 지난 5일 기준 5대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는 연 5.15∼8.11%로 한 달여 전인 지난해 12월1일(연 5.38∼7.36%) 대비 상단이 0.75%포인트 올랐다. 지난 2일 우리은행이 가산금리를 0.40%포인트 올리면서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단이 시중은행 가운데 유일하게 연 8%까지 넘겼다.
은행들이 예대금리차를 벌리며 이자 장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당국은 재차 관리에 나섰다. 금융권 등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최근 시중은행 대출 금리에 대한 점검 강화를 통한 대출 금리 인상 억제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수신 금리가 하락하는 등 대출 금리가 올라갈 유인이 없어 (은행의) 대출 금리 인상의 당위성이 없다”고 밝혔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기존에 시행하고 있는 대출금리 모니터링을 한층 더 강화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금융당국이 예금 금리 상승은 억제했지만, 대출 금리의 상승 방향을 되돌리지는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 소비자 사이에선 은행의 예금 금리 인상만 틀어막는 당국의 정책이 서민의 대출 이자 부담은 줄이지 못하고 은행 이익만 늘렸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에 당국이 부랴부랴 대출 금리에 대한 개입에 나섰지만, 예금 금리 개입에 따른 부작용을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는 게 맞느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여기에 ‘예대 금리 공시’ 도입을 통해 예금 금리 인상을 등 떠밀다가 돌연 정반대 성격의 주문을 하는 등 정책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리 결정은 시장 원리에 맡기는 게 최상인데 정부의 입김이 작용하다 보면 시장이 왜곡돼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은 은행권이 고금리를 제시하며 시중 유동성을 흡수해 제2금융권 등의 자금 경색이 심해지는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에 금리에 대한 개입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시중은행 한 고위관계자는 "금융사의 독점력에 대한 금융당국의 개입은 타당하지만, 그 수준을 벗어나는 개입은 시장경쟁 원리에 맞지 않는다"며 "금리 수준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이 노골화되면서 시장 왜곡으로 이어질 우려가 커진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