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부의 대물림?’ 과도한 규제에 말라가는 장수기업

글로벌 추세 역행하는 상속세제…이중과세‧과세방식 문제 산적 구시대적 인식도 한몫…“기업승계, 상속 외 사회적 역할도 커”

2024-01-12     김민주 기자
사진=픽사베이
[매일일보 김민주 기자] 과도한 규제가 장수기업 육성을 가로막고 있다. 한국엔 100년 이상의 연혁을 지닌 기업이 10여곳에 불과하다. 이웃나라 일본의 100년 기업은 3만개, 미국은 2만개에 달하는 것과 비교하면 현저히 적은 수준이다. 일제강점기로 산업화가 늦춰진 역사적 요인도 존재하지만, 업계 및 전문가들은 ‘제도적 문제’를 가장 큰 걸림돌로 꼽는다. 해외 주요국들은 상속세를 부과하지 않거나, 기업승계 지원을 위해 직계비속에는 경감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상속인과 피상속인 관계를 구분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최대 60%(최대주주 할증평가 시)에 달하는 상속세를 부과하고 있다. 상속·증여세 개혁은 기업경쟁력 제고와 국가의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필수불가결하단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국제적 추세에 역행하고 있는 현행 상속세 부과방식 및 세율 체계의 부작용은 다양한 지표로 확인할 수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상속세 과세방식과 세율의 합리적 개편방안 검토’ 보고서를 살펴보면, 한국의 GDP 대비 상속‧증여세수 비중은 2020년 기준 0.5%로 OECD 평균(0.2%)의 2.5배다. 직계비속에 대한 상속세 최고세율 역시 50%로 OECD 평균(약 25%)의 2배에 달한다. 특히, 최대주주 등으로부터 주식을 상속받을 경우 할증평가(20% 가산)가 이루어져 사실상 60%의 상속세 최고세율이 적용되며, 이는 OECD에서 가장 높다. 국제적으로 높은 상속세 최고세율을 유지하면서 소득세 최고세율을 계속 인상해, 전체적인 세부담이 증가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미 한번 소득세 과세대상이었던 소득이 누적돼 상속세 과세대상이 돼 이중과세의 성격을 갖는다. 반면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은 직계비속에 대한 상속 시 상속세를 부과하지 않거나, 세율을 인하하고 있다. 현재 OECD에서 상속세를 부과하는 23개 국가 중 15개국은 사망자(피상속인)가 부를 축적하는 단계에서 이미 소득세 등이 과세됐다는 전제 하에 상속세율을 소득세율보다 낮게 유지하고 있다. 상속세 과세방식 전환도 시급하다. 전문가들은 ‘유산세형’이 납세자의 부담능력에 따라 조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응능부담원칙’에 위배되기에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유산세형은 사망자의 유산 전체에 대해 초과누진세율을 적용한 후 각자 상속분에 배분된 세액을 납부하는 방식으로, 상속인의 실제 상속분이 많든 적든 동일한 세율이 적용된다. 유산취득세’ 방식은 공동상속의 경우 유산을 먼저 각자의 상속분에 따라 분할·계산하고, 각자의 상속분에 초과누진세율을 적용한다. 상속세를 부과하는 OECD 국가 중 우리나라, 미국 등 4개국만 유산세 방식을 적용하고 이 외는 유산취득세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 증여세에 대해서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과세하고 있는데, 이처럼 상속세와 증여세 간 과세방식의 차이를 두는 국가는 없다. 타 선진국은 차등의결권, 거부권부 주식 발행, 공익재단에 대한 주식 출연 등 다양한 방식으로 경영권을 방어 또는 승계할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이러한 제도적 장치가 제한 또는 금지돼 원활한 경영권 승계가 어려운 실정이다. 국내 세제 개편 추진이 더딘 이유 중 하나로 기업 승계에 대한 구시대적 인식이 거론된다. 유독 한국에선 승계 작업을 부정적 방향의 ‘부의 대물림’으로 폄훼하는 기조가 만연하다. 전문가들은 기업 승계는 단순히 개인자산을 후대가 이어받는 것이 아닌, 경제주체의 사회적 역할 확장이 내포됨을 이해해야한다고 꼬집는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측은 “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기업경영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상속세제도 개편이 시급하다”며 “상속세율 인하 및 과표구간 단순화, 최대주주 주식 할증평가 폐지, 상속세 과세방식 전환 등 과제가 산적”이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