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과점 논란’ 불똥으로 곤혹스러운 SK그룹
대한민국 통신∙정유 고스란히 ‘SK 손 안에?’
2009-09-18 류세나 기자
SKT∙SK에너지 각각 시장 점유율 50%∙36.5% 차지
‘담함 하지 말라’ ‘초과이익분 환원해라’ 주문에 울상
SKT, 시민단체부터 “시장독식…괴물” 취급받아
SK에너지, 6년간 LPG가격 담함 사실로 ‘입방아’
[매일일보=류세나 기자] SKT 이동통신요금 인하 여론으로 촉발된 ‘독과점’ 논란의 불똥이 SK그룹 전체로 튀었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메릴린치가 우리나라 이동통신 요금수준이 다른 회원국들에 비해 비싸다고 발표하면서 국내 최대 이통사인 SKT가 논란의 핵심으로 떠오르더니, 수년째 국내 정유시장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SK에너지까지 과점 논란에 휩싸였다. 또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과거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분식회계 혐의로 구속됐던 점까지 새삼 거론하며 SK그룹의 도덕성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현행 공정거래법은 상위 1개사의 시장점유율이 50%를 넘거나, 상위 3사의 점유율 합계가 75%를 넘는 시장을 독과점 상태에 놓여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다른 경쟁시장에 비해 강도 높은 규제를 하고 있다. 요금인하 논란으로 SK그룹까지 뭇매
지난 1984년 ‘한국이동통신’이라는 이름으로 국내 통신산업에 뛰어들었던 SKT는 현재 이통시장 내 50% 이상의 점유율을 확보하며 시장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굳히고 있다. SKT를 비롯한 KT(옛 KTF), LGT 등 3개사가 시장을 분할하고 있지만 각각 ‘5:3:2’의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어 사실상 SKT의 독주라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형태의 시장은 SK에너지가 업계 1위 자리에 올라 있는 석유시장 사정역시 마찬가지다.2008년 말 기준 석유시장은 SK에너지(36.52%), GS칼텍스(29.83%), 현대오일뱅크(18.42%), S-OIL(13.72%) 등 4개의 정유사가 과점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석유수입사의 등록요건 완화, 지난 5월 수평거래의 부분적 허용 등으로 과거에 비해 경쟁여건이 개선된 것은 사실이지만 유통단계에서 정유사간 경쟁을 제한하는 요소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이에 따라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6일 석유산업에 대한 경쟁정책보고서를 발간하며 석유수입사의 등록요건을 완화해야함을 피력하기도 했다.이렇게 SK그룹의 양대사업인 SKT와 SK에너지가 모두 시장에서 독과점 형태를 띠고 있다 보니 이에 따른 화살이 자연스레 그룹전체로 돌아가게 된 셈이다.이와 관련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SK그룹이 벌이고 있는 사업 중 통신과 정유부문은 모두 독과점 시장인데, 두 사업 모두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높은 수익을 거두고 있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며 “특히 SK그룹은 여러 개의 독과점 사업을 운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표적인 제조업체도 갖고 있지 않아 상대적으로 국가 경제 기여도면에서도 뒤쳐진다”고 주장했다.또 다른 시민단체 관계자는 SKT에 대해 “이동통신 산업을 비정상적으로 독식하고 있는 ‘괴물’”이라고 표현하며 “정부가 나서서 SKT를 제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하지만 원천적으로 독점 혹은 과점의 형태를 띠는 시장 자체가 ‘불법’인 것은 아니다. 다만 독과점 기업은 이 같은 시장형태에서 얻은 추가이윤을 연구개발 투자를 통한 서비스의 질 향상, 요금인하 등을 통해 소비자에게 환원해야한다는 게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특정 기업의 독점체제가 구축되면 해당 기업이 가격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생산자잉여가 늘어나게 되고, 독점체제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신기술 개발이나 연구개발 투자에 더욱 힘을 쏟기 마련이다. 이는 과점시장의 원리에도 비슷하게 적용되는데, 이 때문에 일정이상의 수익을 보장받기 위해 경쟁업체간 가격담합 사례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정부는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해 담합행위 등 독과점 시장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를 벌이고 있지만 이윤추구를 목표로 하는 기업들의 담합행위는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실제로 지난 14일 SK에너지, SK가스 등 LPG를 공급하는 6개 회사가 6년간 판매가격을 담합해온 사실이 공정위에 의해 밝혀지기도 했다. 충분한 요금인하 여력에도 ‘시장논리’ 타령만?
‘독과점 시장’ 중에서도 대표적인 케이스로 손꼽히고 있는 산업은 역시 ‘이동통신 시장’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SKT는 이통시장의 절반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 기업이다.특히 최근 메릴린치와 OECD 보고서가 우리나라 요금이 다른 회원국들에 비해 비싸다고 발표하면서 대표적 독과점 시장인 이통시장을 둘러싼 요금인하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이 같은 목소리에 시민단체와 더불어 정당들까지 가세해 이통시장의 지배적 사업자인 SKT를 압박하고 있다. 업계 리딩업체인 SKT가 가격인하를 단행해야 KT, LGT 등의 요금인하가 자연스레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에서다. 이와 관련 홍익대학교 정영기 교수는 지난 17일 국회에서 열린 ‘이동통신요금 적정한가? 여야 합동 토론회’에 참석해 “지난 2001∼2008년 SK텔레콤의 누적 영업초과이익이 11조2000억원에 이르렀다”며 “이동통신사들은 공공의 자원인 주파수를 사용해 돈을 번만큼 과도한 초과이익을 주파수 경매제 등으로 흡수해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이날 토론회를 마련한 한나라당 이경재 의원도 “2004∼2008년 이통사들이 2세대(2G) 통신망을 활용해 거둔 누적 영업초과이익이 10조4천억원에 달했다”며 “각각의 회사마다 방법은 다를 수 있지만 이통사들이 요금을 인하할 수 있는 여력은 충분한 상태”라고 이통료 인하 방안에 뜻을 모았다.이통사 대표로 참석한 SKT 하성호 상무는 “영어초과이익은 기업이 추구하는 목표인데 정부가 나서서 초과이익을 환수한다면 어느 기업이 경영활동을 하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이익을 많이 내기 때문에 요금을 내려야 한다는 식의 논리는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SKT를 비롯한 이통사들이 국가에서 부여한 전파자원을 활용해 이익을 내고 있다는 점, 또 주파수의 ‘주인’이 아닌 ‘수탁자’ 임을 고려하면 “관리자로서의 적절한 보상을 받는 것으로 그쳐야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는 모양새다. 또 시민단체들 외에 여야 정치인들까지 이통사 요금인하 문제를 논의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SKT를 비롯한 이통사들이 이를 무시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SKT 관계자는 “이전에도 가계통신비 경감을 위해 노력해 왔고 앞으로도 이에 대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면서도 “그러나 아직 요금인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나 시점이 정해진 바는 없다”고 말했다.이 관계자는 이어 “‘서비스 품질을 고려한 이통료의 가격 차이는 당연하다’는 게 SKT의 공식입장이지만 계속되는 여론 악화로 인해 내부적으로 요금조정을 놓고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한편 SKT, SK에너지 등 SK그룹 계열사의 독과점 논란이 불거지자 일부 시민단체 사이에서 과거 최태원 SK회장이 분식회계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사실이 새삼 거론되는 등 SK그룹에 대한 도덕성 논란이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당시 최 회장은 SK글로벌(현 SK 네트웍스)의 2001년 회계연도 채무를 줄여 1조5,587억원의 이익을 낸 것으로 분식회계를 하고, 자신이 소유한 워커힐 호텔 주식과 SK C&C 소유 SK 주식을 맞교환하는 과정에서 비상장 주식인 워커힐 주식을 과대평가한 혐의로 2004년 기소된 바 있다. 때 아닌 ‘분식회계’ 거론으로 도덕성 논란까지
이와 관련 SK그룹 관계자는 “분식회계 사건으로 실형을 살고, 과거 정부로부터 사면까지 받은 일이 다시 거론돼 당혹스럽다”며 “죄 값을 치르지 않았다면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이미 마무리된 사안과 그룹 도덕성을 연관 짓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