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 양극화'에 비우량채 미매각 속출
'신용등급 AA' 미만 자금조달 어려워
우량채엔 수십조원 자금 몰리며 흥행
2024-01-25 이광표 기자
[매일일보 이광표 기자] ‘연초 효과’로 새해 회사채 시장 경색이 조금씩 풀리고 있지만, 비우량 신용등급 기업은 여전히 자금조달 시장에서 외면받고 있다. 신용도가 높은 우량채이거나 그룹의 후광 효과가 있는 기업에만 자금이 쏠리며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하고 있는 셈이다.
시장에서는 자금의 우량기업 쏠림 현상이 더 심화될 경우 비우량채 기업의 자금난이 가중될 거라고 우려한다. 회사채 시장에서는 신용등급 AA 이상 회사채를 '우량', A 이하를 '비우량'으로 분류한다.
2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효성화학은 최근 1200억원 규모의 회사채 수요예측을 진행했으나 700억원의 주문만 들어왔다. 효성화학은 1.5년물 700억원, 2년물 5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할 계획이었다. 700억원도 KDB산업은행의 주문 물량이다. 산은은 수요예측에서 미매각이 발생하면 효성화학 회사채 일부를 매입하기로 했었다. 결국 산은을 제외하면 효성화학 회사채는 전량 미매각된 것이다.
효성화학 신용등급은 A로 비우량채에 속하지만 A등급 회사채는 통상적으로 매년 1월 강세를 보여왔다. 기관투자자들이 연초 자금 집행에 나서면서 회사채 수요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는 이같은 연초 효과마저 사라진 것이다.
반면 우량등급 회사채엔 대규모 자금이 몰리고 있다. AA+등급의 LG화학은 회사채 발행 수요예측에서 총 3조8750억원의 주문이 쏟아졌다. LG화학은 2년물 750억원, 3년물 2000억원, 5년물 1250억원 등 총 4000억원에 대한 수요예측을 진행했다. 발행 물량의 10배에 가까운 주문이 몰린 것이다.
지난 6일 LG유플러스의 회사채 수요예측에도 2000억원 모집에 3조2600억원의 자금이 몰렸다. 포스코도 35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앞두고 지난 5일 실시한 수요예측에서 모집금액 10배에 달하는 3조9700억원의 매수 주문을 확보했다. 2012년도 국내 회사채 발행 수요예측 제도 도입 이후 역대 최대 규모다. KT 역시 지난 4일 15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위해 진행한 수요예측에서 2조8850억원어치 매수주문을 받았다. 이들 기업 모두 AA 이상인 우량등급이다.
이에 따라 비우량채 기업의 자금난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 등으로 조달시장이 급격히 경색되면서 3~4분기 A급 회사채 발행이 거의 전무했었다. 올해 첫 A급 회사채였던 효성화학이 수요예측 미달사태를 겪으면서 비우량채에 대한 투자자들의 투심이 더욱 얼어붙을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는 “연초효과를 우량채 기업만 누리는 상황이라 지난해 실적이 확정되는 오는 3월까지는 투자자들의 A등급 기업 옥석가리기가 계속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