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학에서 '절멸' 또는 '멸종'이란 개념은 생존해 있던 종의 개체가 더 이상 세계에서 확인되지 않는 것을 뜻한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멸종된 것은 정책의 멸종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멸종된 정책은 기후 위기 분야다. 지난 대선에서부터 RE100과 탄소 중립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자취를 감춰버렸다. RE100은 'Renewable Energy 100'의 약자로 2050년까지 기업에서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 에너지로 대체하자는 국제적 기업간 협약 프로젝트다. 탄소 중립은 2050년까지 EU 차원의 온실가스 배출과 제거가 균형을 이뤄 온실가스 배출을 0으로 만든다는 의미다.
RE100과 탄소 중립은 이제 우리 사회와 경제가 직면한 현실 과제가 됐지만, 정책은 무엇인지 의문이다. 글로벌 수요처로부터 재생 에너지 사용 요구가 점차 늘어나는데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에서 이를 위한 구체적인 대안을 가지고 있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애플, 구글과 같은 다국적 기업은 물론 삼성과 LG, SK 등 주요 대기업 역시 RE100 동참을 선언했지만 정부는 오히려 원자력 발전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친환경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을 빠른 속도로 진행하기 위한 정책 논의를 시작하고 결정해야 할 절실한 시점이다. 그러나 정책 논의는 멸종됐고, 대신 정치만이 생존하게 됐다. 전임 정부가 정책을 추진한 배경은 보지 않고 단순히 뒤집겠다는 의지 하나로 정치가 정책을 멸종시킨 것이다. 그 결과가 국제적 표준에 역행하는 '탈(脫)탈원전', 원자력 발전의 확대다.
우려스러운 것은 정책의 멸종이 리더의 멸종에 기인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이다. 사회의 리더는 정치인이기에 앞서 공동체가 미래로 나아가는 방향을 제시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사회의 리더가 멸종했다. 오로지 정치인만이 남아있는 세상이 됐고, 진영 간 갈등은 사회의 리더들이 선택받지 못하고 사라지는 멸종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선거 결과로 당선인은 달라질 수 있지만 각 시대에는 다수의 리더가 존재했고 그들의 생각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으로 작용했다. 과거 추상적인 담론을 던지고 더 나은 사회로 가는 구체적인 정책으로 엮어냈던 적도 있었다. 금융실명제, 남북 평화, 한미 FTA, 반값 등록금, 경제 민주화, 신재생 에너지 등은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으로 작용했고 결과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사회를 내일로 나아가게 할 이야기를 하는 정치인이 있을까. 거대 담론 속에서 정책을 논의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리더가 있을까. 물가와 금리, 차세대 성장 동력, 인구 감소, RE100과 탄소 중립, 교육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리더는 찾아 볼 수 없다.
정책을 논의하는 리더가 사라졌고, 대신 그 자리에는 상대 당의 흠결을 찾아내거나 잘못을 찾아내는 것에만 골몰하는 '꾼'들이 차지했다. 이런 정치인들은 멸종되지 않는다. 어딘가 살아있을 리더를 다시 찾아내고 필요한 정책을 만들어낼 기회는 아직 남아있다. 결국 리더를 키우고, 정책을 만들어내는 것도 국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