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투자자들이 보락에 쏠린 이유

LG종가 사돈될 보락, 첫 상한가 대비 주가 3.6배 폭등

2009-09-18     김경탁 기자
'재벌 테마'의 힘은 역시 대단했다. LG가 장손 구광모 LG전자 과장(현재 휴직중)이 식품첨가물 및 원료의약품을 제조하는 중소기업 보락 정기련 대표의 맏딸 정효정과 결혼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10일 이후 코스닥 상장사인 보락 주가는 말 그대로 미친 듯이 치솟았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른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으로, 한국거래소가 보락에 대해 투자경고종목 지정이라는 강수를 뒀고, 증권가 애널리스트들도 우려의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보락의 주가폭등을 개미투자자들의 '묻지마 사재기'쯤으로 단순하게 평가할 수는 없어 보인다. LG그룹이 그동안 방계기업에 대해 베풀어온 은전(?)을 생각하면 황태자의 처가에 대해 기대 이상의 지원이 음으로, 또 양으로 갈 것이라는 예상은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투자경고종목 지정에도 불구 6일 연속 상한가

보락 주가가 이상급등 현상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 8월 말부터였다. 보락은 8월 31일과 9월 3일 두 번에 걸쳐 상한가를 기록했고, 거래소는 3일 '현저한 시황변동에 대한 조회공시'를 요구했다. 이튿날인 4일 보락이 "당사는 현저한 시황변동(주가급등)에 영향을 미칠만한 사항에 대해 기 공시된 사항 이외에는 진행중이거나 확정된 사안은 없다"는 답변을 내놓자 이후 4일과 7일 2거래일 동안 보락 주가는 하향 안정세를 보이는 듯 했다. 그러나 주가는 8일부터 다시 급등하기 시작했고, 구광모와 정효정의 혼사소식이 전해진 10일부터 18일까지 7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다. 그 와중에 거래소가 16일 보락에 대해 '투자경고종목' 지정을 한 것은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보락 주가는 첫 상한가를 기록했던 8월 31일 종가 2460원에 비해 18일까지 3.6배(종가 8860원)에 가까운 폭등을 기록했다. 재벌테마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이 정도면 작전세력의 개입을 의심해 볼만한 수준인 것이다.보락종목 관련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다음 월요일부터 하한가 행진이 시작되는 거 아니냐는 불안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이 회사 등기임원인 황보대호 이사가 9월 4일 2만주에 이어 18일에도 3만주를 장내에 내다판 소식이 전해지자 이러한 불안감은 더욱 커져가는 상황이다.언젠가 '거품'이 꺼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고, 그 과정에서 투자손실을 보는 사람들도 발생할 것은 분명한 일이기는 하지만 투자자들의 이러한 불안감과 별개로 그동안 LG그룹이 방계그룹에게 베풀어왔던 은전을 생각하면 주식시장의 폭발적인 반응이 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제기될 수 있다.

구본호사건과 보락파동의 거리

이번 보락 주가 급등 사태를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례는 지난해 증권시장을 혼란에 빠뜨렸던 '재벌가 자제 주가조작 사건'이다. LG그룹 방계혈족으로,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6촌 동생인 구본호씨는 이 사건으로 지난해 6월 허위공시 등을 통해 시세차익을 거둔 혐의로 구속됐고, 올해 3월 1심에서 징역 3년에 추징금 172억원, 6월 2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추징금 86억원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구씨는 재판과정에서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LG 구씨 가문의 역사에서 구본호씨 사례는 좀 독특한 경우로, 사실 LG그룹이 그동안 방계기업들을 대해온 태도를 생각하면 구씨가 적극적으로 허위공시를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재벌테마'의 위력은 충분히 발휘될 수 있었을 것으로 관측된다. LG가는 창업파트너였던 구씨와 허씨(GS그룹)의 결별을 감안하더라도 다른 재벌그룹에 비해 자손이 많기로 유명한데, 셀 수 없이(?) 많은 자손들에도 불구하고 경영권 분쟁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 독특하게 평온한 가풍을 보여왔다. LG그룹의 지주회사인 '주식회사LG'의 지분은 수많은 구씨와 김씨, 이씨(외가)들에게 분산돼 있고, 그룹의 중요 현안을 결정하는 공식기구(?)가 구씨 집안의 가족회의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이다. LG가 그렇게 내부분란 없이 평온한 가풍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가족회의를 통해 중요 현안을 결정하는 절차적 방식과 함께 방계그룹에 대해 아낌없는 지원을 해온 것도 큰 몫을 해온 것으로 평가된다.

LG그룹의 주력계열사들과 거래하는 수많은 부품소재 및 서비스 공급 업체 중에서 적지 않은 수가 범LG가 혈족이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회사들이고, 풍부한 LG그룹 물량은 수많은 구씨들이 큰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토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종가집 사돈' 보락엔 어떤 혜택이?

이런 상황에서 장손의 처가로 낙점받은 중견기업이 앞으로 어떤 수준의 혜택과 후광을 받게될지는 충분히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주식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투자자들로서는 '보락'이라는 무명기업에 한발이라도 걸쳐놓고 싶은 욕구가 생길 만도 한 셈이다.투자자들의 이러한 현실인식과 관련해서 보락 측은 최근의 주가급등 상황에 대해 당황해 하면서도 앞으로 LG그룹과의 사업적 연계가 회사의 앞날에 어떤 긍정적인 효과를 줄지에 대해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보락은 1959년 8월 17일에 한국농산공업(주)로 설립돼, 1963년 향료를 주 목적사업으로 영위함에 따라 보락향료공업(주)로 상호를 변경했고, 이후 1989년 사업다각화에 따라 현재의 '주식회사 보락'으로 변경했다. 거래소 상장은 1989년 11월 30일. 식품첨가물 및 원료의약품 등의 제조, 판매를 주요 사업으로 하고 있는 이 회사는 식품에 들어가는 파인애플 에센스와 껌베이스 등을 생산해 국내외 제약회사와 식품회사 등에 납품하고 있으며, 지난해 매출액 186억원, 영업이익 8000만원을 기록했다. 현재 주주로는 정기련 대표가 지분 20.94%를 보유한 최대주주이고, 정 대표의 아내인 홍영순 씨 등 특수관계인 7명을 포함하면 최대주주 지분율이 45.88%에 달하며, 구광모씨와 결혼하는 정효정씨는 보유지분이 없다. 정기련 대표의 맏사위가 될 예정인 구광모씨는 구본무 회장의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친아들로 지난 2004년 구본무 회장의 양자로 입적됐으며, 지난 2007년부터 미국 스탠포드에서 MBA 과정을 밟았고, 지난 8월에 학업을 마쳤다. 재계 안팎에서는 LG그룹의 지주회사인 (주)LG의 지분 4.58%를 보유해 구본무 회장과, 구본준 LG상사 부회장,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에 이어 개인 4대 주주에 올라있 구씨가 언제쯤 LG그룹에 복귀해 본격적인 승계과정을 밟을 것인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