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도 내수도 불확실성 최고조…금융위기 상황 빼닮아
경제지표 곳곳 적신호..."올해 1%대 성장도 위태로워"
경제 양대축 동반 붕괴...정부는 "하반기 회복" 낙관만
2023-01-26 이광표 기자
[매일일보 이광표 기자] 한국 경제가 '풍전등화' 신세다. 지난해 고물가와 고금리, 고환율 등 3고(高) 파고로 어려움을 겪은 끝에 4분기 성장률은 2년 반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수출과 내수 모두 역성장하는 가운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의 위기가 도래했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제기된다.
2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직전분기대비·속보치)은 -0.4%로, 2020년 2분기(-3.0%) 이후 2년 6개월 만에 마이너스로 전환했다.
우리 경제의 양대 축인 민간소비와 수출이 모두 부진했던 점이 역성장의 직접적인 요인이 됐다.
황상필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지난해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펜트업 수요(보복·지연 수요)가 많이 올라와 2∼3분기 민간소비가 회복됐는데 (4분기에) 조정을 받았다"면서 "부동산거래 위축으로 이사수요가 줄면서 가전 등 내구재 소비도 줄었다"고 설명했다.
'수출 부진'이 뼈아팠다. 지난해 1분기 3.6% 증가했던 수출은 2분기 3.1% 감소했다. 3분기(1.1%) 소폭 증가했지만 4분기 들어 다시 5.8% 감소했다. 그중에서도 수출 선봉 역할을 하던 반도체의 수출액은 1292억3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1.0% 증가하는 데 그쳤다. LG경영연구원은 올해 국내 연간 총수출 증가율이 0.8%에 그칠 것으로 봤다. 2021년 10.8%, 지난해 4% 대비 큰 폭으로 떨어진 수치다. 수출이 국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암담한 지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타개했던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 결국 수출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우울한 지표다.
수출과 마찬가지로 내수 성장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날 한은이 발표한 ‘1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번달 소비자심리지수는 전월 대비 0.5포인트 상승한 90.7을 기록했다. 전월 대비 소폭 상승했지만 소비자심리지수가 8개월 연속 100을 하회하고 있다.
소비자심리지수는 소비자동향지수(CSI) 중 6개 주요지수를 이용해 산출한 심리지표다. 경제 상황에 대한 소비자심리를 종합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2003~2022년 장기평균치를 기준값 100으로 놓고 이보다 크면 낙관적으로 보고, 이보다 작으면 비관적인 것으로 판단한다. 소비자들이 향후 경제 전망을 여전히 나쁘게 보고 있다는 셈이다.
특히 국제유가나 공공요금 인상 등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향후에도 소비자심리가 개선될지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대내외 불확실성도 남아 있어 추세적인 전환은 지켜봐야 한다는 평가다.
황희진 한은 경제통계국 통계조사팀장은 “소비자심리지수는 주요국 경기 둔화 등으로 수출이 감소하고 있지만, 소비회복 흐름이 이어지면서 전월에 비해 소폭 상승했다”며 “지수수준은 100을 하회해 부정적인 시각이 우세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올해다. 한은은 지난해 11월 수정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우리 경제가 1.7%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는 이보다 비관적이다. 올해 성장률을 1.6%로 낮춰 잡은 상황이다. 1%대 성장률 자체는 2%대로 여겨지는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것이자 코로나19로 마이너스 성장했던 2020년(-0.7%),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2009년(0.8%)을 제외하면 2000년대 들어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일각에선 올해 들어서도 경기 하방 리스크가 커지면서 기존 성장률 추정치도 하향 조정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이달 중순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직후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올해 성장률을 (작년) 11월에는 1.7%로 봤는데 한 달 조금 넘었지만 그사이 여러 지표를 볼 때 그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커질 것 같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유럽의 재정위기, 미국의 재정절벽과 중국의 경제 경착륙 부진 등 ‘빅3’의 부진이 경기 침체를 가져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세계 경제가 유사한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한다.
이미 해외 투자은행(IB)을 중심으로 우리 경제가 올해 1%에도 못 미치는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측하는 곳도 있다. 국제금융센터가 이달 초 기준 주요 IB 9곳의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집계한 결과 평균 1.1%에 그쳤다. 노무라그룹은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로 -0.6%를 제시, 2020년에 이어 다시 역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편 정부는 하반기 회복할 거라는 낙관론만 내세우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작년 4분기 실질 GDP 발표 직후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올해 1분기의 경우 기저효과, 중국 경제 리오프닝(오프라인 활동 재개) 등에 힘입어 플러스(+) 성장 전환이 가능할 것"이라며 "올해 상반기 우리 경제는 세계 경제 위축 등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지만, 하반기로 갈수록 세계 경제 및 반도체 업황 개선 등으로 점차 회복 흐름을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