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지난 설 연휴 끝자락부터 빙점 아래 두 단위 숫자를 오르내리는 최강 한파가 엄습한 가운데 도시가스 요금, 열 요금 인상 등으로 전국 곳곳에서 “난방비 폭탄을 맞았다”라는 가구가 속출하고 ‘에너지 빈곤층’의 불만과 한숨이 커지자 정부는 지난 1월 26일 천연가스 가격 급등으로 인한 ‘난방비 대란’ 대책으로 취약계층에 대한 ‘에너지 바우처(이용권)’지원금 상향과 도시가스 요금감면 폭 확대 계획을 밝혔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관련 브리핑을 하며 “국민의 부담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정책적 노력을 최대한 기울여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에너지 빈곤층’이란 1970년대에 영국에서 처음 등장한 개념으로, 겨울철 거실 온도 21℃, 거실 이외의 온도 18℃를 유지하기 위해 지출하는 에너지 구매비용이 소득의 10%를 넘는 가구를 일컫는다. 에너지 빈곤 기준은 “ (에너지 구매비용 ÷ 가구소득) × 100 = 10% 이상(↑)”이다. 우리나라에서 에너지 빈곤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건 2005년 경기도 광주에 살던 15세 여중생이 전기요금을 내지 못해 단전된 집에서 촛불을 켜고 잠들었다가 화재로 목숨을 잃은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정부는 2030년 에너지빈곤가구 0%를 목표로 하고 있다.
정부는 난방비 대책으로 기존 에너지 지원 대상자만을 대상으로 한 지원책을 확대하기로 했다. 취약계층 난방비 지원을 위해 1,800억 원을 투입하여 사회적 배려 대상자 160만 가구에 월 가스요금 할인 한도를 기존 9,000원~3만 6,000원(동절기 기준)에서 1만 8,000원~7만 2,000원으로 2배 늘리고, 기초생활수급가구 등 취약계층 117만 6,000가구를 대상으로 ‘에너지 바우처’ 지원액을 15만 2,000원에서 30만 4,000원으로 2배 인상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160만 가구와 117만 6,000가구’ 사이에는 상당 부분 중복 지원 대상자가 존재할 뿐 아니라 아예 누락 되어버린 사례까지도 있다. 그야말로 실태조사가 미진하고 미흡한 주먹구구식 행정의 전형(具代表性)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혜택을 늘려도 그런 제도가 있는 줄조차도 모르거나 신청 절차를 몰라 혜택을 받지 못한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 대상자 수 자체가 정확한 실태조사 없이 책정된 것이어서 사각지대를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지난해 10월 ‘2023년도 예산안 분석 보고서’에서 “에너지 빈곤층에 대한 실태를 조사하지 않고 있다.”라고 꼬집고 “조사를 조속히 시행해 에너지 복지사업의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점검해야 한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지난 1월 29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신영대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가스요금 할인 대상인데도 혜택을 받지 못한 취약계층이 지난해 41만 2,139가구로 나타났다. 2020년 71만 3,287가구, 2021년 36만 3,473가구로 ‘구멍’은 여전히 존재하고 꾸준하다.
가스요금 할인과는 별도로 매년 9만 원씩 지원되는 ‘에너지 바우처’도 마찬가지다. 2020년 4만 7,180가구, 2021년 5만 5,323가구가 신청 대상인데도 몰라서 혜택을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12만 2,220가구도 아직 ‘에너지 바우처’ 혜택을 받지 못했다. 실제로 ‘에너지 바우처’ 지급 대상의 경우 소득 기준으로 기초생활수급자이면서 동시에 세대원 기준으로 노인·장애인·임산부 등이어야 한다. 기초생활수급자라고 해도 세대원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제외되는 등 지원 대상이 협소하기 그지없다. 더욱이 ‘에너지 바우처’와 가스요금 할인 모두 ‘수혜자 신청주의’로 운용되는 탓에, 제도 자체를 모르거나 신청 방법을 몰라 지원을 못 받는 사각지대도 적지 않다. 이른바 ‘수원 세 모녀 사건’에서 드러난 ‘수혜자 신청주의’ 복지 행정의 한계가 에너지 요금 할인제도에서도 적나라하게 노정되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다양한 복지 제도가 끊임없이 도입됐지만, 그때마다 제도의 존재 자체를 모르거나 신청 절차가 복잡해 많은 수가 수혜 대상에서 제외 또는 누락 되어버리는 심각한 문제가 터져 나왔다. 정부의 홍보 노력이 부족한 데다 빈곤층일수록 사회적으로 고립돼 있거나 생활고 또는 장애에 시달려 정보의 사각지대에 놓인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빈곤을 ‘증명’해야 하는 까다로운 신청 과정에서 심리적 상처를 받고 중도에 포기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특히, 요양·의료기관 장기 입원자, 사회보장시설 입소자 등은 주소지와 실제 거주지가 달라 안내조차 못 받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분석됐다. 당연히 수혜 대상을 적극적으로 발굴하는 한편 여러 복지 프로그램들을 한곳에서 상담 받고 쉽게 신청할 수 있도록 서비스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다. 매서운 한파가 들이닥친 데다 난방비까지 올랐는데도 불구하고 감면 혜택도 누리지 못한 채 올해 더욱 추운 겨울을 곤욕 속에 견디고 있을 ‘에너지 빈곤층’을 생각하면 마음까지도 얼어붙어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을 따름이다.
지난해 9월 27일 국회가 뒤늦게 에너지 빈곤층 실태조사를 위해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이 에너지복지 사업을 실시하는 경우 에너지이용 소외계층에 관한 실태조사를 3년마다 시행하고 그 결과를 공표하도록 하며, 필요한 경우엔 추가로 간이 조사를 시행할 수 있도록 하는 「에너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지만, 정부가 국회로 예산안을 넘긴 지난해 9월 초를 넘겨서 법 개정이 이뤄진 탓에, 당장 올해 예산에는 반영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쉬운 대목이다. 정책은 정확한 자료와 면밀한 데이터로부터 나온다. 결단코 통계조차 없거나 주먹구구식 실태조사에서는 양질의 고품질 정책이 나올 수 없다. 일찍이 세계적인 경제학자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고, 관리할 수 없으면 개선할 수 없다”라고 역설했다. 올바른 정책은 정확하고 면밀한 실태조사에서 출발함을 명심해야 한다.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연합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