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만족도 ‘제로’ 중대재해법…노사갈등에 제자리걸음

경영계‧노동계, 제도 실효성 놓고 갈등 지속 전문가 “처벌보다 예방…면책 기준 구체화”

2024-02-02     신승엽 기자
서울
[매일일보 신승엽 기자]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 시행 1년이 지났지만, 경영계와 노동계는 실효성에 무게를 두고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중대재해법은 노동자 사망사고 등 발생 시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가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드러나면 1년 이상의 징역 및 10억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경영계는 중대재해법의 처벌보다 예방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노동계는 처벌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양 측의 주장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에서 중간점을 도출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중대재해법은 노동자의 사망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법 시행 이후 사망사고가 줄었지만, 유의미한 수치에는 못미쳤기 때문이다. 제도 시행 취지와 달리 악재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실제 고용노동부의 ‘2022년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 현황’에 따르면 중대재해법 시행 첫 해인 지난해 사망사고 건수는 611건, 사망자는 총 644명으로 집계됐다. 전년 수치(사망사고 665건, 사망자 683명) 대비 각각 54건(8.1%), 39명(5.7%) 감소한 셈이다.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제도의 안착은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작년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 중 고용부가 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수사에 착수한 사건은 229건이다. 이중 수사를 마친 사건은 52건(22.7%)으로 조사됐다. 기소 의견으로 송치된 건수는 34건에 불과했다.  이러한 현상은 경영계의 입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경영계는 제도 도입 단계에서부터 법 시행을 반대한 바 있다. 노동자의 안전 확보에는 동감하지만, 처벌이 과도하다는 주장이다. 제도의 구체화가 이뤄지지 않아 오히려 시장에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모호한 제도를 지적했다. 경총은 “법률상 경영책임자 개념과 범위가 불명확한 상황에서 노동부와 검찰이 ‘대표이사에 준하는 최종 의사결정권을 가진 자만 경영책임자가 될 수 있다’고 해석해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수사기관이 형사처벌 대상을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중대재해법을 산업안전보건법과 일원화해야 하고, 이를 실현하기 어렵다면 기업에 큰 부담을 주는 형사처벌 규정 삭제를 최우선으로 검토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법 이행 주체와 의무 내용을 명확히 하고,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법 적용 유예기간을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복처벌 논란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중대재해법은 현행 산업안전보건법과 겹치는 부분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겹치지 않는 부분에서 형법과 함께 삼중처벌이 가능해질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만 놓고 봐도 사업주의 책임이 세계 최고 수준(의무조항 1222개)에 달하기 때문에 중복규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크다.  반면 노동계는 제도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제 막 법 시행 1년을 맞은 지금은 실효성을 따지기보다 엄정한 법 집행을 위한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징벌적 성격을 가진 예방으로 근본적인 대책을 확보하겠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는 양 측의 공통 목표인 ‘노동자 안전확보’에 만족하기 위해서는 예방에 집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라정주 파이터치연구원장은 “예방을 강화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본다. 안전예방대책 의무를 모두 지킬 경우 처벌을 면책해주는 규정도 신설할 필요가 있다”면서 “진영대립을 떠나 예방을 강화하는 방안 수립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중소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채희태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원은 “중소기업은 중대재해법 시행에도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경우가 다수”라며 “현장지원기관을 중심으로 찾아가는 설명회 및 간담회를 개최해 중소기업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현황 및 애로사항을 확인하고 추가적인 지원사업을 발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중소기업의 다양성과 중대재해사고의 복잡성을 감안해 사례별로 구체적인 면책 기준을 명시적으로 밝혀 법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며 “중대재해 관련 판례가 축적되기까지 우수사례집 발간을 통해 기존 중대산업재해 사례를 중대재해법의 체계에서 재구성해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