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축하인가 권리인가, 본질인가 비본질인가

2024-02-06     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 처장
이근면
[매일일보] 비혼을 선언한 직원에게도 결혼한 직원과 동일하게 기본급의 100%와 유급휴가 5일을 지급하겠다고 밝힌 L사에서 그 첫 대상자가 지난달 2일 나왔다. 당초 L사는 5년 이상 근속한 만38세 이상 임직원이 비혼을 선언하면 별도 확인절차 없이 결혼 축하금과 동일한 액수를 해당 임직원에게 지급하기로 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30대 절반이 결혼하지 않는 시대에 기혼자에게만 주어지는 복지혜택을 공평하게 비혼자에게도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시도가 5대 그룹 중에선 L사가 처음이라 주목을 받았지만 사실 ‘비혼 지원금’이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한 외국계 화장품 기업은 이미 6년 전인 2017년부터 비혼을 선언한 직원에게 결혼 축하와 관련된 복리후생을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다. S은행은 결혼기념일에 10만원씩 지급하는 축하금에 대응해 동일한 액수의 ‘욜로 지원금’을 미혼 직원에게 연1회 지급하고 있다. 국내 한 증권사 노사도 올해부터 비혼선언 직원에게 100만원과 휴급휴가 5일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구성원과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과 가치관에 발맞추기 위해 그 어떤 조직보다 기민하게 움직이는 곳이 기업이라지만 이 비혼지원금과 관련한 뉴스를 보면 뭔가 어색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결혼축하 복지는 결혼이라는 일어난 사건에 대해 회사가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한다는 의미를 전한다는 취지로 시작된 것이다. 결혼이 개인의 선택의 영역이듯 이에 대한 회사 차원의 축하도 선택의 영역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개인의 선택에 의한 미혼, 즉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 대해 축하금과 동일한 복리후생을 지급한다는 것은 ‘축하’라는 본질은 사라지고 축하금과 휴가라는 떡고물만 남은 것 아닌가? 이처럼 본말이 뒤집힌 사례는 또 있다. 회사가 세워진 날을 기념하는 창립기념일은 그 날짜를 기억하는 데 의미가 있지 창립기념일에 쉬는데 의미가 있지 않다. 국내 한 대형 모바일 플랫폼 기업은 창립기념일 기념휴가를 임직원이 쓰고 싶은 날 쓰도록 했다. 8월 15일이 의미가 있는 건 그 날 일본이 항복을 선언하고 대한독립이 달성되었기 때문인데 엉뚱한 날에 광복을 기념한다고 하면 다들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호의가 오래도록 제공되면 받는 사람은 호의의 정신은 잊고 그에 딸린 이득만 권리로 여긴다. 결혼 축하금도, 창립기념일 휴가도 그 제도에 담긴 본질적 의미는 퇴색되고 그에 딸린 복리후생만 누려야 할 권리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본질의 훼손, 비본질의 본질화 현상이 비단 회사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지방자치는 각 지역의 실정과 맥락에 맞는 의사결정을 통해 지역민의 행복과 안녕을 증진하기 위해 실시하는 것이다. 본격적으로 지방자치를 시행한 지 30여 년이 지난 지금 본질적 취지보다는 중앙정부로부터의 독립 그 자체와 그로 인한 지방 토호 권력의 끼리끼리 나눠먹기만 남은 듯 하다. 지방자치장들의 일탈이 도를 넘어 뉴스를 도배하며 형사 문제를 겪는 일이 비일비재하며, 법적처벌도 상상 이상이니 시민을 위하는 걸까? 치부의 수단일까? 축하는 간데 없고 축하금만 남은 결혼축하금, 창립 기념은 사라지고 휴가만 남은 창립기념 휴가를 보며 자치(를 통한 국리민복의 확대)는 사라지고 지방(권력의 방종)만 남은 세태가 걱정스러운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