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銀 수수료 면제ㆍ인하 경쟁…정부 압박에 '생색내기' 지적도
윤 대통령 "은행은 공공재" 압박성 발언에 눈치보기 심화
규모 작아 인하 효과 미미..."정부 개입 과도하다" 비판도
2024-02-06 이광표 기자
[매일일보 이광표 기자] 은행들이 각종 수수료 감면과 대출 금리 인하에 나서고 있다. 금융당국과 정치권이 금융회사의 공적 역할을 강조하며 은행들을 압박한 결과다.
코로나19 이후 급증한 가계·기업 대출을 바탕으로 달성한 사상 최대 이익, 금리 상승기에 커진 예대 금리차 등에 대한 여론의 눈총이 따가울 뿐 아니라 대통령까지 "은행은 공공재"라며 공익을 강조하고 나선 것도 이같은 움직임을 부치기고 있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온라인에 이어 오프라인 창구 거래에서 발생하는 이체(송금) 수수료까지 만 60세 이상 고객을 대상으로 면제하기로 했다. 창구 송금수수료는 송금액에 따라 건당 600∼3천원 수준으로, 이번 조치를 통해 혜택을 받는 고객은 약 25만명에 이를 것으로 신한은행은 추정하고 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온라인 금융업무에 어려움을 겪는 시니어 고객들의 창구 송금 수수료를 없애 더 쉽고 부담없이 은행을 이용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신한은행은 앞서 지난달 1일부터 모바일뱅킹 앱 '뉴쏠(New SOL)'과 인터넷뱅킹에서 타행 이체 수수료, 타행 자동 이체 수수료를 전액 면제한 바 있다. 진옥동 신한금융그룹 회장 내정자와 한용구 신임 은행장의 '고객중심' 경영철학을 반영한 결정이었다.
이후 KB국민은행도 같은 달 19일부터 모바일·인터넷뱅킹 타행 이체 수수료를 없앴고, NH농협은행도 비슷한 시점에 모바일 뱅킹 이체 수수료 면제를 발표했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도 각 이달 8일, 10일부터 모바일·인터넷 뱅킹 타행 이체 수수료를 받지 않을 예정이다.
은행의 감면 경쟁 대상은 이체 수수료뿐만이 아니다. 5대 은행(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은 지난해 말 취약 차주의 중도상환 수수료를 1년간 한시적으로 면제하는 데 합의했고, 신한은행은 실제로 지난달 18일부터 중도상환 해약금(수수료)을 받지 않고 있다.
은행들은 대출 금리도 일제히 낮추고 있다. 특히 개별은행이 임의로 덧붙이는 가산금리를 줄이면서 실제 대출금리 하락 폭이 시장(채권) 금리나 코픽스 등 지표 금리의 하락 폭보다 훨씬 크다. 지난 3일 기준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신규 취급액 코픽스 연동)는 연 4.950∼6.890% 수준이다. 약 한 달 전 1월 6일(연 5.080∼8.110%)과 비교해 상단이 0.130%포인트, 하단이 1.220%포인트나 하락했다.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의 기준인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가 같은 기간 0.050%포인트(신규취급액 기준 코픽스) 떨어진 것과 비교하면, 실제 4대 은행 변동금리 낙폭은 하단(-0.130%포인트)이 약 3배, 상단(-1.220%포인트)은 약 24배에 이른다.
주택담보대출 혼합형(고정) 금리(은행채 5년물 기준. 연 4.130∼6.640%)와 신용대출 금리(은행채 1년물 기준. 연 5.150∼6.260%)도 한 달 사이 상·하단이 0.506∼0.690%포인트 떨어졌다. 주택담보대출 혼합형과 신용대출의 지표 금리인 은행채 5년물과 1년물의 금리는 같은 기간 각 0.638%포인트(1월 6일 4.527%→2월 3일 3.889%), 0.563%포인트(4.104%→3.541%) 하락했다.
다만 은행들의 이런 노력이 ‘생색내기’에 그친다는 지적도 있다. 고금리에 시달리는 취약 차주들의 실질적 부담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주담대 금리 인하 혜택은 대출을 새로 받는 사람에게만 적용된다.
통상 주담대 변동금리는 전월 기준 코픽스에 가산금리를 더해 6개월마다 한 번씩 바뀐다. 지난해 말 변동금리로 대출받은 금융소비자는 올 상반기가 지나야 하락분이 신규 금리에 반영되는 구조다. 은행권 관계자는 “비대면 수수료의 경우 은행 전체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어쨌든 수익이 나는 부분을 은행들이 포기했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조치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금리 상승과 함께 은행의 이자 이익이 크게 늘어난 만큼, 다양한 감면과 인하를 통해 취약계층의 이자 부담을 줄여주는 것은 공익적 측면뿐 아니라 은행의 건전성 관리 측면에서도 필요하다는 데는 은행들도 공감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금융당국과 정치권이 민간 기업인 금융사 경영에 과도하게 개입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임원회의에서 “금리 상승기에 은행이 시장금리 수준, 차주 신용도 등에 비춰 대출 금리를 과도하게 올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말 “은행은 공공재라고 생각한다”며 “은행 시스템은 군대보다, 국방보다도 중요한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지나치게 예금·대출 금리 조정에 간섭하면, 예금 금리와 시장금리, 대출 금리가 자연스럽게 연동되는 금리 체계가 망가져 오히려 소비자들이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며 "더구나 엄연히 주주가 있는 민간기업 은행에 공익 지출만 강조하는 것도,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최후의 완충장치로서 충격을 흡수해야 하는 은행의 체력을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