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외환법' 선진시장 인프라 구축…'코리아 디스카운트' 완화 기대

20년 만에 외환시장 빗장 해제...외국 자본 유입 기대 한은 "환율 안정 기여할 것"..."외국인 놀이터" 우려도

2024-02-07     이광표 기자
오재우


[매일일보 이광표 기자] 정부가 20년동안 걸어 잠궜던 외환시장 빗장을 푼다. 국내 시장에서만 원화 거래가 가능한 폐쇄적인 구조가 원·달러 환율 안정을 저해하고, 금융산업 발전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 일환으로 외환시장 운영시간을 런던시장 마감 시간에 맞춰 새벽 2시까지 연장하고, 해외 금융기관의 국내 외환시장 참여도 전격 허용하기로 했다. 시장 관계자들은 정부의 외환시장 선진화 조치가 국내 증시의 ‘만성적 저평가’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긍정적 평가를 내놓고 있지만, 일각에선 외환시장이 선진금융기법을 앞세운 외국 자본의 '놀이터'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7일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국내 외환시장의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인가 받은 해외소재 외국 금융기관(RFI)의 국내 외환시장 직접 참여 허용, 외환시장 개장 시간 새벽 2시까지 연장, 선진수준 시장 인프라 구축 등을 골자로 한 ‘외환시장 구조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이르면 내년 하반기 도입을 목표로 공론화 과정, 법령 개정, 은행권 준비 등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현재 원화는 역외 외환시장에서 거래가 불가능하고, 국내 시장에서만 거래가 가능하다. 이마저도 국내 금융기관만 외환시장에 직접 참여할 수 있고 거래 시간도 제한적이다. 국내 외환시장은 오전 9시에 개장해 오후 3시30분에 문을 닫는다. 문제는 이런 외환시장 구조가 원화에 대한 접근성을 떨어뜨리고, 원화표시 자산에 대한 매력을 낮춰 외국인 자금 유출을 부추기고 있다는 게 외환당국의 설명이다. 외환시장 참여자가 적다 보니, 선박 수주 실적에 따라 선물환 매도 물량이 큰 조선사나 해외투자를 확대 중인 개인·기관의 움직임으로 인해 원·달러 환율이 큰 폭으로 오르내리는 등 변동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정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강화된 규제와 위험 관리 노력 등에 힘입어 우리나라 거시건전성과 대외안정성이 크게 개선됐기 때문에 시장을 개방해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외환시장 개방으로 시장 참가자와 거래량이 늘면 환율 변동성도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송대근 한국은행 국제국 외환업무부장은 “역외에서 국내 외환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경로가 생기고, 미국 뉴욕 역외 차액결제선물환(NDF) 수요가 국내 외환시장으로 흡수되면서 거래량은 지금보다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며 “환율 측면에서는 외환시장 구조가 개선되면서 해외에 투자하고자 하는 국내 수요는 물론, 역외에서 국내 원화 자산에 대한 투자 수요가 양방향으로 늘면서 환율이 안정적으로 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한국이 MSCI 선진국지수에 들어가려면 외환시장 전면 개방이 필요하다. 외환당국은 “MSCI 선진국지수 편입을 위해 외환시장 선진화 방안을 추진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지만, 시장에서는 정부가 한국의 MSCI 선진국지수는 물론 세계 3대 채권지수 중 하나인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을 염두에 두고 국내 외환시장 개방을 추진했다고 해석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한국이 두 지수에 편입할 경우 국제 금융시장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져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문제도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우리 증시의 선진지수 편입 시 외국인 투자자금이 증시로 최대 61조원이 순유입될 것으로 추산했다.  정부는 2008년부터 MSCI 선진국지수 편입을 시도했으나 역외 외환시장 부재, 영문 자료 부족, 외국인 투자자 등록 의무 등을 이유로 번번이 고배를 마신 바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국내 자본시장제도를 국제 기준에 부합하도록 획기적으로 개선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면서 시차에 관계없이 외국인도 한국 외환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도록 외환시장 개장 시간을 새벽 2시까지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금융권 안팎에서는 외환시장 개방으로 외국 자본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환율 변동성이 오히려 확대되고, 시장이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거래시간을 연장하고 나서 유동성이 적은 야간시간대에 역외 기관이 움직이는 등 급격한 이벤트가 발생하면 쏠림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환투기 리딩방'이 기승을 부리는 등 개인들도 환에 눈을 뜬 상황"이라며 "거래량이 적은 시간대에 '큰 손'들이 움직이면 시장 왜곡이 발생할 수 있고, '환 개미'들이 피해를 볼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