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바람 업으면 더 빨리 달릴 수 있다”

[인물탐구]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온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2009-09-21     김경탁 기자

[피이낸셜투데이]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은 모든 면에서 전형적인 '인파이터 복서'를 연상시킨다. 앞으로 끝없이 돌진하면서 몇 대 맞는 것쯤은 개의치 않고 끝까지 파이팅해 결국 상대를 쓰러트리는 것이 그의 경영스타일이다.

지난 8월 국제복싱재단의 초대 이사장직 추대를 수락해 취임한 것도 그렇지만, 9월 10일 있었던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서 경영과 복싱을 비유해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복싱' 사랑을 굳이 숨기지 않았던 사례는 그의 성격을 잘 말해준다.

그러나 그렇게 강하기만 해 보이는 그의 겉모습과 달리 '신용과 의리'라는 '한화정신' 앞에서는 누구보다 따뜻한 인간미를 보여왔던 것이 또한 그의 숨겨진 모습이고, 미국 정재계를 넘나드는 그의 인맥은 글로벌 기업인으로서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온 경영사를 <파이낸셜투데이>가 따라가 봤다. 

 

한화, ‘그레이트 첼린지 2011’로 파이팅!

김승연 회장은 지난해 10월 9일 있었던 한화 창립 56주년 기념식에서 "세계적인 경기불황이 우리에게도 큰 시련이 되고 있고, 어두운 터널의 한 가운데를 지나며 한 걸음 내딛기조차 쉽지 않지만 어둠이 걷히기만을 기다려서는 결코 경쟁자를 앞서지 못한다"고 말했다.

김승연 회장은 "모두가 극심한 공포에 움츠릴 때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미래성장의 발판을 선점하는 용기가 필요하다"며, "바람을 멈출 순 없지만 바람을 이용할 수는 있다. 맞바람을 안으면 서있기도 힘들지만, 뒷바람을 업으면 더 빨리 달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이 지적한 바와 같이 한화의 역사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온 과정이었다. 사실 김승연 회장의 경영사에 첫 시련을 꼽는다면 그룹회장 취임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1981년 창업주 김종희 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29살의 젊은 나이에 최연소 재벌총수가 된 것이다.

주변의 근심과 우려가 뒤섞인 시선 속에서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계열사 사장단과 함께 그룹을 이끌어나가기 위해 옷차림 하나에서부터 흐트러짐 없는 자세를 유지해야 했다.

김승연 회장의 리더십은 취임 이듬해인 1982년 한양화학(현 한화석유화학) 인수와 그 합작사인 경인에너지(현 인천정유)의 경영권 확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룹내외에서 확고하게 인정받을 수 있었다.

당시 한양화학은 엄청난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고, 최대주주였던 다우케미컬이 한국에서 철수하려는 것은 세계적 불황으로 석유화학산업 전망이 어둡다는 비관적 전망 때문이라는 시선이 우세했다.

하지만 김승연 회장은 다우케미컬의 한국 철수가 장기경영전략보다는 단기경영실적에 급급한 미국의 전형적인 전문경영인들이 본사의 재무구조를 견실하게 하기 위해 해외자산을 처분하는 계획의 일환이라고 판단했고, 석유화학의 장래성은 결코 어둡지 않다고 보았다.

이후 한양화학은 침체되었던 석유화학경기가 되살아나면서 인수 1년 만에 흑자경영으로 돌아섰고, 김승연 체제 출범 후 최대의 성공작이 됐다.

'의리'의 경영자 

김승연 회장이 위기를 기회로 만든 두 번째 사례는 10여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한국경제 전체가 IMF구제금융 사태로 휘청거리기 1년여 전인 1996년 10월 한화의 제44주년 기념식에서 김승연 회장은 "이전의 개혁은 실패였다"고 선언해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이다.

남들이 등 떠밀려 구조조정을 하기 훨씬 전부터 구조개혁을 시작한 한화는 IMF위기를 잘 넘긴 것은 물론 그룹의 재도약 기회로 활용할 수 있었고, 준비된 내실을 기반으로 2002년 대한생명 인수를 통해 제조업을 넘어 금융전문 기업으로서 제2의 창업을 하게 된다.

물론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한화 역시 IMF 사태의 폭풍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고, 창업주의 손때가 묻은 계열사들을 매각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는데, 당시 김 회장은 매각 금액을 줄이더라도 고용은 100% 승계하는 것을 원칙으로 계열사 매각에 임했다.

하지만 세상일이 늘 그렇듯 그의 뜻대로 모든 일이 돌아가지는 않았고, 50여명의 직원이 일자리를 잃게 되자 김 회장은 사내방송에서 "나는 그들의 가정에 많은 고통을 준 가정파괴범이며, 만일 내가 경영을 잘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비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IMF로 인한 구조조정 당시 "정말 회장직에서 물러날 각오로 경영에 임했다"는 김 회장은 모든 것을 잊기 위해 발에 물집이 생겨 터질 정도로 뛰는 등 스트레스로 인해 체중이 5kg 이상 빠졌다고 한다.

한화그룹이 전면에 내걸고 있는 '한화정신'은 신용과 의리인데, 직원들에 대한 의리를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감 때문에 이렇게 스스로를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자학에 가까운 운동을 했던 것이다.

이후 한화는 1999년 위기를 익낸 임직원들에게 격려금을 줄 때 이미 남의 회사직원이 된 한화에너지 임직원들에게도 "미안하다"며 격려금을 지급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화의 '위대한 도전' 

지난해 그룹의 재도약 기회로 기대를 모았던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결국 무산되면서 회사와 주주들에게 큰 손해를 끼칠 수밖에 없게 된 때문인지 김승연 회장은 요즘 운동을 다시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산업은행과 사이에 진행되고 있는 대우조선 인수 이행보증금 반환 분쟁에 대해 "링에서 한판 붙어야지"라는 발언으로 화제가 됐던 10일 전경련회장단회의장에서 김 회장은 근황을 묻는 질문에 "스포츠에 힘쓰고 있다"며 주먹을 휘두르는 복싱동작을 연출해 눈길을 끌었다.

물론 10여년 전과 같이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방식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은 건강상태를 묻는 질문에 "술을 끊었다"고 답했다. 중년의 관록이 풍기는 50대 후반으로 접어든 김 회장은 그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위기'가 곧 '기회'일 수 있다는 여유와 자신감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김승연 회장은 지난해 11월 한화인재경영원 개원식에서 비상경영활동 '그레이트 첼린지 2011'을 선포했고, 이에 따라 한화그룹은 지난 상반기 예상을 뛰어넘는 좋은 실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레이트 첼린지'는 지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준우승을 거둔 국가대표팀 김인식 감독(한화구단)의 '위대한 도전'으로 변용되면서 다시 주목받기도 했다.

김승연 회장은 지난 7월 있었던 하반기 경영전략회의에서 상반기동안 내실경영을 통해 축적된 능력을 바탕으로 하반기부터 미래성장을 담보할 수 있는 신성장 동력 개척에 전력을 다 할 것을 각 계열사에 주문했다.

이제 '위기'가 '기회'로 탈바꿈하는 '김승연 마법'을 다시 기대할 순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