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조 클럽' 증권사 실종…올해 실적 전망은 더 '암울'
대형사도 일제히 어닝쇼크...증시 부진이 수익 발목
부동산 PF 비중 많은 중소형사는 유동성 위기 비상
2024-02-12 이광표 기자
[매일일보 이광표 기자] '1조 클럽'이 속출했던 증권가가 지난해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들이며 1년 만에 실적이 급전직하했다. 갑작스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고강도 금리 인상, 고물가 등 굵직한 경기 불확실성 요인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면서 증시가 부진했던 탓이 크다. 특히 부동산 경기도 꺾인 가운데 레고랜드 사태까지 겹쳐 채권시장이 패닉에 빠져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비중이 큰 증권사들은 유동성 위기에까지 내몰렸다.
그 결과 5곳의 대형 증권사(△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키움증권) 모두 실적이 고꾸라졌다. 중소형 증권사들은 악화된 실적에 구조조정 후폭풍이 불어닥쳤을 정도다. 증권가는 지난해 브로커리지, 트레이딩, IB(투자은행) 등 대부분의 사업부문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줄줄이 영업이익이 반토막 났다. 문제는 올해도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안보인다는 점이다.
12일 증권가에 따르면 미래에셋증권은 2022년 연결기준 영업이익 8459억원, 순이익 6194억원을 낸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전년보다 영업이익은 43.1%, 순이익은 47.7% 각각 감소한 규모다. 에프앤가이드 컨센서스에 따르면 미래에셋증권의 예상 영업이익은 9335억 원, 순이익은 6951억 원이었다. 실제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이보다 각각 9.4%, 10.9% 적게 나오면서 시장 기대치를 밑돌았다.
삼성증권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55.8% 감소한 5786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당기순이익도 56.1% 줄어든 4239억원을 기록했다. 삼성증권은 재작년 1조3087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실현했지만, 1년 만에 실적이 반토막 났다. 전망치 또한 14.47%나 밑돌았다. 거래대금 급감과 금리상승에 따른 수수료·운용 수익 감소가 실적을 끌어내렸다.
NH투자증권은 최근 잠정실적 공시를 통해 2022년 연결기준 영업이익 5214억원, 당기순이익 3029억원을 거뒀다고 밝혔다. 2021년과 비교해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59.7%, 67.5% 줄었다. 부문별로 보면 국내외 주식시장 부진 등으로 브로커리지 및 금융상품 수수료수익이 전 분기 대비 감소했다. 기업금융(IB) 수수료 수익 역시 시장 침체 영향으로 줄었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당기순이익 5686억원을 거두며 전년 대비 60% 줄었고, 키움증권 역시 지난해 영업이익 6564억원에 그치며, 전년 대비 45.7% 감소했다.
중소형사들은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한화투자증권의 경우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79% 감소한 438억원을 기록했다. 당기순손실은 476억원으로 전년 대비 적자전환했다. 한화투자증권은 중국국저에너지화공집단(CERCG) 관련 민사 항소심에서 일부 패소한 영향으로 실적이 고꾸라졌다. 원고에게 배상액을 선지급하면서 당기순이익 적자를 기록했다.
SK증권 또한 실적이 90% 넘게 쪼그라들었다. SK증권은 작년 영업이익이 15억원으로 전년 대비 97.1%, 당기 순이익은 13억원으로 96.7% 감소했다. 한양증권의 영업이익은 372억원, 당기순이익은 240억원으로 집계됐다. 영업이익은 68% 감소했고, 당기순이익도 69.7% 줄었다.
다올투자증권은 작년 영업이익이 985억원으로 전년 대비 33.28% 줄었고, 당기 순이익은 766억원으로 56.49% 감소했다. 현대차증권은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이익이 1146억원으로 전년 대비 26.8% 감소했다. 당기순이익은 871억 원으로 26% 줄어들었다.
증권사의 실적 악화는 예견된 일이다. 지난해 금리 인상에 속도가 붙으면서 보유 운용자산 손실 규모가 커진 데다 주식거래대금 감소 등으로 주식위탁매매 수수료 수익 저하 또한 불가피했던 탓이다. 강원도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사태 등으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을 둘러싼 불안감도 커졌다. 시장 자금 경색으로 증권사를 둘러싼 유동성 우려 또한 불거졌다.
이 과정 속에서 메리츠증권만이 유일하게 성장 가도를 달렸다. 메리츠증권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총 1조92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1% 증가했다고 밝혔다. 영업이익 1조원 돌파는 창사 이래 처음이다.
전문가들은 올해도 증권 업황이 녹록지 않을 전망이어서 증권사들이 실적 개선이 쉽지 않을 거로 보고 있다. 윤유동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증권주 상승세는 배당락 이전 수준으로의 되돌림이며 추세적 상승으로 보기는 어렵다"면서 "최근 증권사의 원활한 단기자금 조달,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긍정적인 뉴스지만 부동산 PF 이슈가 완전히 해결됐다고 보기에는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다만 최근 들어 투자심리가 회복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회복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거래대금이 증가하는 등 브로커리지 지표가 개선되고 있고 유동성 우려가 낮아지며 CP금리도 하락세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강승건 KB증권 연구원은 "물가 안정에 대한 기대와 기업들의 실적 조정이 상당 부분 진행되면서 나타나고 있는 주식시장의 반등으로 개인투자자들의 투자심리가 일정 수준 회복됐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러면서도 "부동산 금융 위축에 따른 IB 실적 부진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점에서 핵심 수익성 회복에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