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산‧학‧연 R&D 협력…대기업 주도 연구 생태계 조성 급선무
대기업, 인재 양성 소홀… 연구자 채용에만 혈안
국내 과학 단지, 기업 입주에만 집중… 연구소 스타트업 홀대
2024-02-13 이용 기자
[매일일보 이용 기자] 글로벌 여파에 요동치는 국내 산업계를 안정시키기 위해 우수한 인적자원 양성을 통한 연구개발(R&D) 생태를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과 유럽처럼 ‘산‧학‧연’ 연계 구조를 활성화한다면 경영 불확실성을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기업의 역량은 생산 및 제조에 집중돼 있고 연구자들의 연구는 책상 안에만 머무르고 있는 형편이다.
대표적인 예가 제약바이오 업계다.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바이오 의약품 산업이 캐시카우로 떠오르자 삼성, SK에 이어 롯데, CJ, 오리온까지 바이오 분야 진출에 나섰다. 대기업들이 낙점한 산업 분야는 의약품위탁개발생산(CDMO)으로, 외부 기업이 개발한 약품을 위탁 생산해주는 사업이다. 생산 시설의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보통은 대량의 제품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업이 선호된다.
사실상 신약 개발과는 거리가 멀고, 안정적인 수익 창출에 더 특화된 사업이다. 삼성, 셀트리온 등은 이미 관련 업계에서 세계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그러나 두 기업 모두 바이오시밀러 분야에서 성과를 냈을 뿐, 정작 바이오 업계 정점인 '신약 개발' 분야에서는 큰 성과가 없는 상태다.
업계는 그 원인 중 하나로 부실한 산‧학‧연 연계 구조와 대기업의 소홀한 인재 육성을 꼽았다. 대기업이 연구소 및 스타트업과의 연구 생태 조성에 나서야 하는데, 오히려 연구 인력을 빼 가 ‘돈벌이’에만 집중해 업계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하영제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국가 지원을 받는 KAIST, GIST, DGIST, UNIST 등 4대 과학기술원 인재 중 국가기관 및 연구기관에 취업하는 인원은 9.5%다. 세금을 들여 키워놓은 인재들이 삼성, SK, 현대 등 사기업에 취업한 것이다.
KAIST를 졸업한 의료기기 바이오 벤처 C사 직원은 “내가 재학 중인 시절에도 기업과의 연계 과제는 거의 없었다. 정작 졸업생들이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으면 일부 직원들이 대기업으로 스카웃 되는 경우가 빈번하다”며 “대기업은 특정 사업을 시작할 때, 장기적으로 내다보고 미리 대학 시절부터 인재를 키워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산학연 연계를 대표하는 ‘클러스터’의 경우, 국내는 기업만 몰려있는 ‘기업 단지’ 형태로 변질된 상태다. 클러스터는 기업뿐 아니라 연구개발 기관(대학, 연구소)와 금융 투자 지원 담당 기관(벤처캐피털, 컨설팅 업체) 등이 모두 모여 시너지 효과를 노릴 수 있는 산업 단지를 뜻한다.
우선 R&D센터 밀집 구역인 서울 강서구 마곡산업단지에는 LG그룹 계열사 9개와 롯데, 에스오일, 넥센타이어 등이 입주해 있다. 과천 지식정보타운은 올해부터 광동제약, 안국약품, 중외제약, 휴온스 등이 본사를 이전하거나 연구개발 센터 입주를 진행하고 있다. 송도에는 삼성, 롯데, 셀트리온, SK 등의 생산 기지가 있다. 모두 서울 인근에서 근무할 수 있다는 조건 덕분에 이공계열 구직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지역이다.
그러나 서울 인근이라는 특성과 대기업의 대규모 입주로 부동산값이 폭증해 대기업 외의 기관은 다양성이 부족한 실정이다. 소규모 연구소 및 스타트업은 해당 지역 입주가 어렵고, 연구자 또한 거주지를 마련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저출산이 심화되며 노동력이 부족해진 국내 특성상 제조 및 생산 기지 확대보다는 우수한 인재 확보가 필수다. 기술력을 통한 투자자의 관심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업계가 생산 역량만 강조하는 만큼, 향후 경영 불확실성이 유발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산학연이 고도로 발달된 클러스터인 미국 보스턴 및 스위스 바젤과 끊임없이 비교될 전망이다.
보스턴은 인근 하버드, MIT 대학의 인재들이 기업의 후원을 업고 연구에만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다. 바젤은 국내가 경기, 서울, 인천, 충북 등 20개가 넘는 곳에 중구난방으로 설치된 클러스터들과 달리 기업이 한 곳에 집중돼 있어 해외 투자자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곳이다.
대기업 및 지자체가 각자의 바이오 클러스터 유치를 고집하지 않고, 산학연 연계와 인재 양성을 통해 산업계의 균형 발전을 도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