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수 칼럼] 대통령실과의 '공천 협조' 인정하자, 먼저 울산부터

2024-02-23     매일일보 기자
이동수
정치적 갈등에서 상당수는 공천과정에서 벌어진다. 특히 후보가 되는 것 자체로 어느 정도의 당선 가능성이 보장되는 거대양당의 경우, 공천을 어떻게 하느냐는 계파 간 갈등을 촉발하는 것은 물론 분당 위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2016년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내에서 벌어진 갈등이 대표적이다. 당시 공천과정에서 유승민 의원 등 '비박계' 의원들을 배제하기 위한 '친박계' 의원들의 집요한 공세가 계속되었다. 김무성 대표가 옥새를 들고 부산으로 내려갔더라는 '옥새 파동'이 불거지기도 했다. 그 결과, 180석을 바라보던 새누리당은 처참히 패배했고, 곧이어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새누리당은 분당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공천에 개입한 혐의로 징역 2년 형을 받았다. 법은 제아무리 촘촘히 만든다고 하더라도 현실을 온전히 규정하고 통제할 수 없다. 예컨대 대통령이 공천에 개입해서 내리꽂는 것과 측근들이 대통령의 후광을 등에 업고 선거에 나가는 건 법적으로는 다른 일이겠지만 사실상 같은 행위다. 이 모든 걸 법으로 막을 순 없을 것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최소한의 선이라는 게 있다. 절차적 공정성이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에서도 2020년 제21대 총선을 앞두고 청와대 출신 인사들이 수두룩하게 나와서 당선되었다. 도의적 차원에서의 비판은 있었지만 법적 차원의 문제가 불거지지는 않았다. 선을 지켰기 때문이다. 여당이 정부의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호구가 되어선 안 된다. 대통령의 명을 받들기 위해 명분이며 절차적 정당성을 깡그리 무시할 때, 여당은 호구가 된다. 그런데 지금 전당대회를 앞둔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의 벌언들을 보면 호구가 되길 작정한 것 같다. 총선 때 대통령이 개입하면 어떡할 것이냐는 질문들에 일말의 거리낌도 없이 무조건 'OK'를 외치고 있는 까닭에서다. 신기한 일이다. 총선에서 외부에 문을 활짝 열어주겠다는데 당내에서도 별 불만이 새어 나오지 않는다. 아마 지금 암묵적으로 찬성하고 있는 의원들은 대부분 "나는 아닐 거다"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나경원 전 의원을 향한 비판에 50명이 넘는 초선의원들이 가담해 연판장을 쓰지 않았을까. 지금 일이 대단히 잘못 돌아가고 있고, 그 일이 나에게도 닥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결코 그럴 수 없다. 물론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평소 하던 주장을 뒤집지 않는다면 그건 소신으로 인정할 수 있다. 국민의힘이 대통령실로부터 '공천 협조'를 구하는데 비판하거나 반대할 생각이 없다. 여당이 대통령 의견을 듣겠다는데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대통령실에서 훌륭한 인물을 추천하고 그가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국민에게도 좋은 일이다. 단, 김기현 의원의 지역구인 울산 남구을부터 그렇게 하자. 만일 자신의 지역구에 대통령 추천 인사가 내려온다고 해도 '협조'와 '선당후사' 등을 이유로 기꺼이 수용하신다면, 그땐 그 진정성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김 의원 본인도 늘 선당후사 정신을 강조하셨으니 한 입으로 두말하시진 않을 것이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