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와 '경기' 사이 스텝 꼬인 한은..."금리 인상 안 끝났다"
이창용 "안개 가득하면 차 세우고 기다려야…긴축 끝 아냐"
"불확실성 여전 물가 상황 지켜볼 것"...경기 침체는 인정
2024-02-23 이광표 기자
[매일일보 이광표 기자] 1년 반 동안 이어진 기준금리 인상 행진이 멈춰섰다. 한국은행이 물가 상승 우려보다 경기침체 우려가 더 심각하다고 판단한 셈이다. 다만 한은의 긴축 행보가 종료된 건 아니다. 한국과 미국간 금리 격차가 벌이지고 공공요금 인상에 따른 물가상승 우려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3일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도 인상 기조가 끝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이날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의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3.5%로 동결한 직후 기자간담회를 열어 이같이 밝혔다.
이 총재는 "물가 상승률이 점차 둔화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연중 목표 수준을 상회하는 오름세가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정책여건 불확실성도 높아 기준금리의 현 수준을 유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향후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둔화 속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최종금리 수준, 중국 경기 회복 영향, 부동산 경기, 금융안정 영향, 금리 인상 파급 영향 등 여러 요인을 면밀점검하는 것이 적절한 시기라고 판단했다는 설명이다.
이 총재는 "1월 물가 상승률이 5.2%로 올라갔는데 왜 (기준금리를 동결) 이러냐고 할 수 있는데, 통화정책은 미래를 보고 한다"면서 "3월 이후로는 많이 떨어질 것을 전제로 보고 있으니, 이 정도 수준에서 지켜보는 것이 오히려 (금리를) 올리는 것보다 좋은 시점에 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3월부터는 물가 상승률이 4%대로 하락하고, 그 추세가 계속돼 연말에는 3%대 초반으로 내려갈 것으로 전망했다. 이 총재는 "지난해 4월 이후 금통위 회의마다 기준금리를 인상하다가 이번에 동결한 것은 어느 때보다 높은 불확실성을 고려한 결정"이라며 "이번 동결을 금리 인상 기조가 끝났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차를 운전하는데 안개가 가득하면 세우고 안개가 사라질 때를 기다린 다음에 갈지 말지를 봐야 하지 않느냐"면서 "(이번 동결을) 그렇게 이해해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준금리 인하 시기에 대해서는 "물가 경로가 장기목표인 2%(상승률)로 가는 게 자료로 확인되면 그때 인하 가능성을 논의할 것"이라며 "그 이전에는 시기상조다. 몇 개월 사이 변화가 나타날 그런 여건은 아닌 것 같다"고 답변했다.
이 총재는 최근의 원·달러 환율 상승세와 관련해 "환율이 물가 경로에 주는 영향은 중요한 고려사항 중 하나"라면서도 "1,300원이나 1,400원 등 특정 수준에 의미를 두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환율 상승은 작년과 마찬가지로 국내 요인보다는 미국 통화정책 최종금리와 지속 기간의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한미 금리차와 관련해 "변동환율제 하에서 특정 적정수준은 없다"면서 "기계적으로 몇%포인트(p)면 위험하거나 바람직하다는 것은 없다. 격차가 너무 벌어지면 변동요인이 될 수 있으니 고려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기준금리를 1년 반 동안 300bp 올렸는데 기업과 가계가 높아진 금리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통화정책이 작동하고 있다"면서 " 큰 시계로 봤을 때 300bp 올린 것이 회사채 금리 전체 시장금리에 영향을 많이 줬다"고 분석했다.
한편 이날 한은은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7%에서 1.6%로 하향 조정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기존 3.6%에서 3.5%로 내렸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미국과 유럽의 연착륙 가능성, 중국의 경기 회복 등은 11월 전망치보다 (성장률) 0.2%포인트(p) 상향조정 요인이었지만, 정보기술(IT) 부진, 국내 부동산 경기 둔화 등은 0.3%포인트 하향 조정 요인이 돼 이를 종합적으로 반영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한은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한 것은 우리 경제를 둘러싼 하방 리스크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기 대비 0.4%(속보치) 감소해 2020년 2분기(-3.0%) 이후 10분기 만에 역성장했다.
올해 들어 경기 둔화 조짐은 더 뚜렷해졌다. 지난 1월 수출은 1년 전보다 16.6% 줄어 지난해 10월부터 4개월째 감소세가 지속됐고, 1월 무역적자는 월간 기준 역대 최대인 126억5000만달러를 기록했다.
한은은 "향후 국내경제는 글로벌 경기둔화, 금리 상승 등의 영향으로 상반기 중 부진한 성장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며 "하반기 이후에는 중국 및 IT경기 회복 등으로 점차 나아지겠지만 전망 불확실성은 높은 상황"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