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합계출산율 0.78명 충격, 미래 없는 한국 국정 전반 재설계를
[매일일보]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의미하는 ‘합계출산율(Total fertility rate)’이 지난해 역대 최저인 0.78명으로 뚝 떨어졌다. 1970년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저다. 합계출산율이 1970년대 3명대에서 2018년에 0.98명으로 처음 1명 아래로 떨어진 데 이어 1년 새 0.03명이 더 줄어 급기야 0.8명 밑으로 추락한 것이다. 2020년 출산율 0.8명대 국가가 된 지 불과 2년 만에 0.7명대로 내려가며 불명예 세계 기록을 또 경신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8개국 가운데 합계출산율이 1명 미만인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정부가 저출산 대응에 지난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16년 동안 무려 280조 원이나 쏟아부었는데도 출산율 반등은커녕 이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출산율인 1.59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지경까지 추락했다니 눈앞이 캄캄하다.
통계청이 지난 2월 22일 발표한 ‘2022년 인구동향조사 출생·사망통계(잠정)’를 보면 지난해 출생아 수가 24만9,000명에 그쳤다. 전년도 26만600명 보다 1만1,500명(-4.4%)이나 감소했다. 심리적 마지노선인 ‘25만 명’마저 무너진 것이다. 30년 전인 1992년과 비교해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을 만큼 속도가 가팔라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전 세계 최악의 인구 쇼크가 덮쳤지만 속수무책이다.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출범한 뒤 실시한 모든 대책이 소용없다. 서울 한복판 초등학교까지 문을 닫고, 지방 대학은 폐교 위기에 내몰리고, 소아과병원이 속속 폐업하고 있다. 그야말로 백약이 무효이다. 인구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려면 합계출산율이 2.1명은 돼야 한다. 우리나라의 연간 출생아 수는 20여 년 전에는 50만~60만 명에 달했으나 지난해는 절반이하로 곤두박질쳤다. 이대로 가면 청장년 1명이 노인 2명을 부양해야 하는 암울한 미래를 맞게 된다. 고령층 부양으로 등골이 휘는 청년들이 아이 낳기를 더 기피하는 저출산의 악순환도 가속화될 것이다.
출산율 급락은 국가를 역동성을 잃고 쪼그라드는 ‘수축 사회’로 만든다. 총인구 감소, 학력 인구 급감, 경제와 납세 주력인 생산가능인구 급감, 병역자원 감소, 세수 감소, 급격한 고령화에 따른 국민연금 조기 고갈, 노동력 감소와 각종 비용 상승에 따른 잠재성장률 하락, 지역소멸 등이 모두 진행 중이거나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는 가운데 미래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막대하다. 더 큰 문제는 지난 20여 년 이상 지속한 저출생(低出生)의 추세가 범국가적인 노력에도 회복의 기미가 보이질 않고 있다는 점이다. 당연히 ‘한국병(韓國病 │ 한국 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부정적인 현상)’을 더 심화시키는 요인이 될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골드만삭스(Goldman Sachs)는 지난해 12월 6일(현지 시각) 발표한 ‘2075년 글로벌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저출산·고령화 국가인 한국의 경제 규모는 세계 15위권 밖으로 밀려날 것으로 예측됐다. 이 보고서는 한국의 경제 규모는 2060년부터 후퇴하기 시작해 2075년이 되면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방글라데시 등 아시아 국가에 뒤처질 것이라는 전망을 했다. 골드만삭스가 성장률 전망치를 분석한 34개국 가운데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한 국가는 한국뿐이다.
출산율이 낮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젊은 세대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의 경력단절, 육아 독박, 가사노동 전담, 양육비 부담, 사교육비 부담 등이 출산율 저하 요인이 아닐 수 없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해 7월 13일 남녀평등이 얼마나 실현되고 있는지를 수치로 한 ‘젠더갭 지수(Gender Gap Index 2022)'를 발표했는데 조사한 146개국 중 한국은 99위에 그쳤고, 맞벌이 가구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시간은 2019년 기준 여성이 187분으로 남성 54분보다 133분 더 많아 무려 3배를 넘어서는 등 무수히 많은 여성의 재생산노동에 무임승차하고 있다. 공무원을 제외한 또래 여성들은 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과 육아 부담 걱정을 밥 먹듯 하고, 양가 부모의 도움은 필수적이고, 육아비용도 적지 않을 뿐 아니라 내 집 마련의 꿈도 요원하며, 어린이들의 안전사고를 방지하고 다른 이용자들의 편의 등을 목적으로 어린이들의 출입을 제한하는 ‘노키즈존(No kids zone)’이 가득한 사회를 ‘맘충(Mom + 蟲│엄마와 벌레의 합성어로 육아하는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이라 손가락질하는 세태는 이를 충분히 방증(傍證)하고도 남는다.
인구 문제는 이제 인구절벽(Demographic cliff)의 인구감소 시대를 넘어 인구지진(Age quake)의 인구소멸 시대를 치달리며 위기감을 높이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대한민국에 미래가 없다. 무엇보다도 ‘아이 낳으면 돈 준다.’라는 단순한 퍼주기식의 근시안적 정책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예산 집행에 있어서도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져서는 결단코 안 된다. 특히 출생과 양육의 특정 시기에 국한한 일시적 현금 지원보다는 생애 전반에 걸친 장기 대책이 화급하다. 양질의 청년 일자리, 주거 불안 해소 등을 포함해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 그리고 낙관을 심어줘야 한다. 여성과 가족 구성원의 관점에서 사회 전반의 불평등을 없앨 의식ㆍ제도ㆍ관행의 혁신도 병행하여 서둘러 살펴야 한다. 이민청 신설도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역대급 최저 출산율 해소의 올바른 대책은 일자리·주거·육아·교육·이민 등 모든 국가 정책 전반을 출산·양육 친화적인 관점에서 치밀하고 촘촘한 재설계를 통하여 국가 존망과 진운의 명운을 건 범국가적 총력전을 펴야 한다. 저출산 문제 해결을 국정의 최우선 순위에 두고 관련 정책에 인적·물적 자원을 과감하게 쏟아붓는 것 말고는 달리 뾰족한 방법이 있을 수 없다.
그야말로 ‘저출산은 청년 세대의 비명’이라는 지적을 뼈아프게 새겨듣고 출산율 제고를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서둘러 강구해야 한다. 발상을 전환하고 인식을 새롭게 해 아이 키우기가 어렵지 않고 살기 좋은 ‘매력적인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맞벌이 부부가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도록 질 좋은 공공 보육 시설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사교육비와 집값 부담을 줄이는 등 교육·거주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부담이나 짐이 아니라 기쁨이 되고 희망이 되며 행복이 되는 사회 여건을 만드는 게 근본적인 해법이다. 이에 걸림돌이 되는 시스템이나 정책과 결별하고 판을 완전히 새로 짜야 한다. 더불어 지역 균형발전 정책으로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 나가야 한다. 수도권과 지방 간의 ‘기회 격차’만큼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하락하고 있음을 통찰하고 ‘수도권 쏠림’ 현상을 서둘러 막아내야만 한다. 더불어 전반적 사회 제도와 시스템도 인구 감소에 대비한 체제로의 전환도 병행해야 한다.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연합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