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특혜 기업의 배신… 정부·정치권 “칼 빼든다”
대한항공, 정부 비판에 마일리지 개편안 전면 재검토
제약업계, 코로나19 백신 치료제 개발비 먹튀 논란
산업계 도덕적 해이 만연… 정부 규제만이 해결책
2023-03-01 이용 기자
[매일일보 이용 기자] 코로나19 팬데믹 시절 정부와 국민의 지원 및 지지를 받았던 기업들이 국민과의 고통 분담은 외면한 기만행위로 비난받고 있다. 이에 정부가 산업계에 경고의 선례를 남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일 업계에 따르면 항공·제약바이오 업계의 일부 기업은 코로나19 당시 정부의 혜택을 받거나 각종 시장 혼란 행위에 대해 묵인을 받고, 지난해 주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대한항공은 국민 정서를 고려하지 않은 마일리지 개편안으로 최근 뭇매를 맞았다. 본래 대한항공은 4월부터 마일리지 공제 기준을 ‘지역’에서 ‘운항거리’로 변경해 공제 기준을 세분화하는 마일리지 개편안을 시행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마일리지를 통해 장거리 노선 항공권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많았던 만큼, 고객들은 ‘소비자 혜택을 줄이는 회사 측의 꼼수’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문제는 대한항공은 코로나19 시절 정부의 수혜를 입던 기업이라는 점이다. 출입국 통제 강화로 존폐 위기까지 직면한 항공사들은 정부의 고용유지 지원금과 국책 금융을 받아 생존을 이어왔다. 엔데믹이 도래하자 대한항공의 매출액도 회복해 지난해 대비 57% 증가한 13조 4171억원, 영업이익은 97% 증가한 2조8836억원을 기록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대한항공의 개편안에 대해 “역대급 실적을 내고도 고객은 뒷전인 것 같다”며 “눈물의 감사 프로모션을 하지는 못할망정 국민 불만을 사는 방안을 내놓았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대한항공 측은 “개편을 통해 다수의 단거리 이용 승객들의 혜택이 더 커질 것”이라며 개편안을 시행하려 했지만, 결국 정부의 비판에 지난 22일 “제도 변경을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며 꼬리를 내렸다. 사실상 정부가 개입하자 비로소 기업이 개선에 나선 셈이다.
코로나19 위기 속 정부의 지원금에 이어 국민의 관심까지 가져갔던 제약바이오 업계는 ‘먹튀’ 논란에 휩싸여 있다. 정부는 국가신약개발사업단을 통해 2020년 9월~2022년 11월까지 약 2년간 '코로나19 치료제·백신 신약개발 사업'을 진행했다. 코로나19 치료제·백신 임상시험 비용 지원을 위해 3년간 치료제 1552억원, 백신 2575억원 등 지원금으로 4127억원을 책정했다. 실제 집행된 예산은 1679억원에 불과했다.
사업단은 그동안 치료제 개발사 5곳, 백신 개발사 9곳에 지원했으나 이 중 셀트리온과 SK바이오사이언스 단 두 곳만 성과를 냈다. 반대로 지난해 3월 정부의 신약개발사업과제 선정을 받았다며 대대적인 홍보에 나선 동화약품의 경우, 3분기 분기 보고서에 ‘임상 중단을 결정했다’라고만 표기, 치료제 개발 중단 사실을 ‘남몰래’ 알렸다.
이 가운데 일양약품은 코로나19 치료제의 효능을 부풀려 주가를 올린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일양약품은 2020년 3월 자사의 벽혈병 치료제가 코로나19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발표했다. 발표 이후 주가는 2만 원대에서 10만 원대까지 급증했는데, 이때 경영진이 주식을 대거 매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염병 공포로 치료제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상황에서 이득을 챙겼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됐다.
국민들의 비난 여론이 커지자 정부도 올해 해당 사건에 손을 댔다. 검찰은 지난달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등 의약품 임상 시험승인 과정에 불법행위가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강제수사에 착수했다.
최근 코로나19와 독감 동시 유행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한 감기약 인기에 혜택을 입은 안국약품도 도덕적 비난을 받고 있다. 정부는 감기약 생산을 독려하기 위해 감기약값을 인상했다. 이에 종근당, 한미약품 등은 감기약을 증산하기 위한 신규 라인을 신설해 화답했다.
그러나 안국약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감기약값 인상 신청에는 참가했지만, 정작 건강보험공단과 가격 인상 폭을 협상하는 과정에서 자진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식약처는 안국약품의 리베이트 사건과 관련해 총 82개 의약품에 대해 3개월 판매정지 처분을 내렸는데, 수요 증가 품목인 감기약에 대한 처분은 유예했다. 각종 리스크에서 벗어난 안국약품은 지난해 영업이익 97억9700만을 달성, 지난해 11억원 적자에서 흑자 전환했다. 향후 정부가 코로나19 특수로 이득을 챙긴 안국약품에게 어떤 처분을 내릴지 관심이 모인다.
업계에서는 기업에 대한 징벌이 윤석열 정부가 취임 초부터 강조한 ‘시장 자유’와 대비된다는 의견이 나온다. 다만 제제의 칼날이 국민 정서에 위배되는 행위에 집중된 만큼, 기업들이 정부를 의식해 국민을 무시하지 못하는 문화가 확산 될 것으로 보인다.
송도의 S제약사 관계자는 “코로나19는 모두가 어렵던 시절이다 보니 산업계 전반에 ‘정부 지원은 당연한 것’이라고 여기는 기조가 생겼다. 팬데믹 당시 개인마다 지급된 국민 지원금에 대한 일부 국민의 인식만 봐도 알 수 있는 상황”이라며 “기업이 고객을 무서워하지 않는 상황이 문제다. 꼭 정부의 제제가 들어가야만 개선이 된다면, 업계 전체의 신뢰도가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