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가 새 먹거리 사활…'STO 투자' 늘리고 '은행영토' 넘보고
정부 '입' 바라보며 신사업 모색...STO 플랫폼 구축 박차
정부 '은행업 빗장 풀겠다"에 법인 지급결제 시장도 군침
2023-03-02 이광표 기자
[매일일보 이광표 기자] 증시가 부진하며 지난해부터 업황의 불확실성이 커진 증권사들이 정부의 정책 기조에 편승해 새로운 먹거리 찾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정부의 STO(토큰 증권 발행) 가이드라인 발표 후 관련 플랫폼 구축과 스타트업과의 협업 등 관련 움직임이 분주해졌고, 금융당국이 은행 과점 체계를 깨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일부 은행업 진출에 대한 기대감도 드러내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한국예탁결제원 등 정부기관들은 STO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의견을 청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금감원은 '가상자산 증권성 판단을 지원하기 위한 태스크포스(이하 TF)'를 구성했고, 한국예탁결제원은 '토큰증권협의회'를 구성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증시가 부진하며 지난해부터 업황의 불확실성이 커진 증권사들은 STO가 국내 금융의 혁신을 이끄는 새로운 먹거리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금융 기관들이 단순히 이자나 수수료 장사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자금이 법적 보호를 받으며 혁신적인 프로젝트에 투자되도록 유도하는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일부 증권사들은 STO로 차별화된 상품을 출시할 수 있어 증권사 간 경쟁의 양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모양새다.
지난해 7월 기준 세계적으로 발행된 STO 시가총액은 약 23조 원이다. 토큰증권발행(STO)은 증가하고 있고, 투자자산의 다양화 관점에서 STO 시장은 확대될 수밖에 없다. 특히 미국에서 STO에 대한 논의는 매우 활발하다. 신생 벤처기업의 자금 조달 수단으로 STO를 승인하기도 했다. STO 시장은 자본시장법 규율 내에서 거래 가능한 상품 수가 무한대로 늘어날 수 있어 증권사에 큰 기회다.
STO 플랫폼을 가장 빠르게 구축하고 있는 증권사는 KB증권이다. KB증권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INF컨설팅 및 SK C&C와 손잡고 STO 플랫폼 구축을 진행 중이다. 또 신한투자증권은 STO 얼라이언스를 만들어 다양한 업체들과 협업을, 미래에셋증권은 HJ중공업과 협약을 맺고 선박금융의 STO를 준비하고 있다.
아직 가이드라인의 세부 사항 확정과 관련 법률의 정비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업계에서는 STO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준비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 24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한국 자본시장의 발전과 미래 기술 및 규범 변화에 선제 대응하기 위해 기존 법제에서는 허용되지 않았던 토큰 증권 발행을 허용했다"면서 "다양한 권리의 증권화를 지원하며 금융 혁신을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세희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STO 시장은 앞으로 1~2년간 수익성이 높은 사업은 아니지만 자본 시장의 혁신 가능성은 분명하다"고 했다. 단기적으로는 증권사들의 마케팅 방식으로 활용되면서 모바일 거래 시스템(MTS)의 월간 활성 이용자(MAU)를 늘리는 전략으로 사용될 것으로 예상했다.
한편 금융 당국이 증권사에 ‘법인 지급 결제’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며 업계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은행권이 내수 시장에서 이자 장사로 손쉽게 돈을 번다는 비판 여론이 커지는 가운데 해당 안이 전격 도입될 경우 증권사와 은행 간 기업 계좌 유치 경쟁이 가능해진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정부서울청사에서 개최한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 1차 회의에서 증권사의 법인 지급 결제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과제 중 하나로 제시했다.
정부는 2006년 이후 현재까지 자산관리계좌(CMA) 등 개인투자자에게만 증권사 계좌를 통한 송금을 허용하고 있다. 법인은 은행의 가상계좌를 반드시 거쳐야만 이체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증권사가 법인 지급 결제 서비스를 시작하면 기업들은 은행을 통하지 않고서도 제품 판매 대금 지급과 협력 업체 결제, 공과금 납부 등을 증권사 계좌로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증권사 계좌가 월급 통장이 돼 회사가 직원들의 급여를 증권사 계좌에 바로 보낼 수도 있다.
기업 시장이 워낙 방대하고 파급효과도 커 법인 지급 결제 허용은 증권 업계의 최대 숙원이었다. 금융투자업계는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해 7월에도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국민의힘 정책위원회와 간담회를 열고 법인 지급 결제 허용을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부터 요구했다.
증권사들은 은행권을 향해 ‘불황에도 폭리를 취했다’는 지적이 잇따르는 현시점을 제도 개선의 최대 기회로 보고 있다. 대형 증권사 상당수를 대기업이 소유한 만큼 제도가 바뀌면 시장 판도가 단숨에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일반적인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