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김경렬 기자] 지난달 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는 변리사가 특허‧디자인‧상표 침해관련 손해배상소송에서 변호사와 공동으로 대리할 수 있도록 하는 변리사법개정안(공동대리 변리사법개정안)을 법사위 2소위로 회부해 민사소송법 등과 충돌 부분을 검토하도록 의결했다. 통상 법사위는 다른 국회 상임위에서 의결되어온 법률안에 대한 자구 심사로 법률로서의 문제가 없는지와 다른 법률과의 충돌 여부를 심사하여 국회 본회의로 넘기게 된다. 해당 법률안 중 심도있는 논의와 검토가 필요한 경우에는 2소위에서 논의 후 다시 법사위 전체회의로 올라오게 된다.
공동대리 변리사법개정안은 국회 소관 상임위인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에서 수정 가결될 당시부터 진통의 연속이었다. 산자위는 변리사단체의 요구와 달리 소송 교육을 이수할 것과 변리사가 단독으로 법정에 출석할 수는 없고, 변호사와 함께 출석해야만 하는 것으로 수정했다. 변리사가 독자적으로 소송대리를 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이례적으로 반대의견이 있었음을 법률안에 부기하며 추가적으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표시했다. 산자위에서 소송대리권 부여에 추가 논의의 필요성을 인정한 만큼, 법사위의 2소위 회부는 당연한 수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리사단체는 법조계의 직역이기주의에 의한 것이라며 폄훼하는 듯하다.
변리사단체 일각에서는 변리사의 소송대리가 필요하다고 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변호사가 특허 등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소송 기간이 상당 기간 지속되기 때문에 기술전문가인 변리사의 소송대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로스쿨제도 도입 이후 연간 수백명의 이공계출신 변호사가 배출되고 있으며, 심지어 변리사 중에서도 로스쿨 출신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필자 또한 학부에서 화학과 생물학을 전공한 변호사로서 관련 기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단지 이러한 전문 변호사들이 특허 등 출원과정에서 먼저 고객들을 만나는 변리사들에 막혀 고객들을 만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통상 과학기술업계에서 변호사와 변리사에 대한 구분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변리사들도 자신들이 대리할 수 있는 권리범위확인심판과 불법적인 고소장 작성 대리를 이용해 변리사를 통해서 분쟁을 해결토록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전문 변호사들은 출원으로 고객과 관계 맺은 변리사를 통해서만 고객을 만난다. 변리사를 의뢰인의 대리인으로 만나며 소송업무를 수행해야한다는 얘기다.
필자가 산업재산분쟁조정위원회 조정위원으로 접한 사건을 보면, 2021년 소제기된 사건이 재판부 사정으로 첫 변론기일도 열리지 않다 2023년에서야 조정으로 회부된 사건이 있다. 현재 서울지역에서 지재전담부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60부부터 63부까지로 4개 합의부만 있다보니, 개별 사건의 진행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 이처럼 법원 사정으로 고려하지 않고 단지 소송기간이 길다는 이유만으로 변호사를 탓하는 것은 소송실무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기술침해에 대해 첨예하게 다투는 과정은 다른 민사소송에 비해 쟁점이 복잡하니 소송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의료소송의 경우도 신체감정 등으로 수년의 소송기간이 소요된다.
외국 사례만 들어 변리사가 소송대리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근거도 빈약하다. 유럽이나 다른 나라들은 소송대리가 허용되는 과정에서 수년의 교육과정 이수를 요하거나 변호사 자격을 이미 가지고 있을 것을 요할 때가 많다. 변리사가 소송대리 한다는 것만으로 우리 제도와 비교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밖에 민사소송법상 ‘공동대리’와 공동대리 변리사법개정안의 ‘공동대리’의 법적 의미가 서로 상충한다. 특허 등 침해소송은 특허 등에 대한 침해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부정경쟁방지나 영업비밀보호 위반 등의 여러 쟁점이 함께 주장되는 게 일반적이다. 특허 등 침해에 한정한 변리사 소송대리가 소송 현장에서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앞서 산자위 논의에서 확인된 문제점과 법조계에서 예견하는 문제점들에 대해 법사위의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국민 한명도 바뀐 제도로 피해보는 일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법률전문가들로 구성된 상임위, 법사위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