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20년 만에 대만에 밀린 국민소득, 전략산업 경쟁력부터 키워야

2024-03-08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박근종
국민들의 생활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인 1인당 국민총소득(GNI │ Gross National Income)이 20년 만에 대만에 추월당했다. 한국은행이 지난 3월 7일 발표한 ‘2022년 4/4분기 및 연간 국민소득(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3만 2,661달러로 전년도 3만 5,373달러보다 7.7%나 줄었다. 지난해 우리나라 1인당 GNI 감소는 2009년 10.4% 감소 이후 13년 만에 가장 큰 감소 폭이다. 그만큼 국민 개개인의 호주머니 사정이 얇아졌다는 의미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이례적으로 원·달러 환율이 연평균 12.9%나 뛰면서 명목 국내총생산(GDP │ Gross Domestic Product)이 줄어 달러 기준 1인당 명목 GNI도 감소했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우리나라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2,150조 6,000억 원으로 전년도 2,071조 7,000억 원보다 789조 9,000억 원(3.8%)이 올랐고,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4,220만 3,000원으로 전년도 4,048만 2,000원보다 172만 1,000원(4.3%)이 올랐으나, 1인당 국민소득(GNI)은 연간의 명목 국민총소득을 추계인구(매년 7월 1일 기준)로 나누어 구하며, 국제 비교를 위해 미 달러화(연평균 환율 적용)로 표시하게 되는바 지난해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1조 6,643억 달러로 전년 1조 8,102억 달러 대비 1,459억 달러(8.1%)나 줄어들었고, 1인당 국민총소득(GNI)도 감소했다. 한편 3.4% 감소에 그치면서 3만 3,565달러로 선방한 대만에 비해 904달러가량 적은 1인당 국민소득(GNI)이다. 한국과 대만의 국민소득이 역전된 것은 2002년 이후 20년 만이다. 불과 5년 전인 2017년만 해도 한국의 GNI는 3만 1,734달러로 2만 5,704달러의 대만보다 무려 23%나 높았다. 더구나 ‘G2’로 급부상한 중국의 공세로 고립무원(边缘化無援)이 가속화하고, 기업·자본·인재가 중국으로 유출되자 대만 젊은이들 사이에선 스스로 ‘귀신섬’으로 자조할 정도였다. 하지만 차이잉원 정부가 ‘기술이 최고의 안보’라는 슬로건을 기치로 정보기술(IT) 중심의 대기업 육성으로 선회한 전략이 극적 변화를 불렀다. 20년 만에 대만에 역전당한 1인당 국민총소득(GNI)과 25년 만에 일본에 역전당할 경제성장률에 우리는 냉철한 반성과 각성이 필요하다. GNI는 국제 비교를 위해 원화로 집계한 뒤 연평균 환율을 적용해 달러화 기준으로 환산하는데 지난해 원화는 12.9% 급락한 데 반해 대만달러는 6.8% 하락에 그쳤다. 지난해는 고환율의 덫에 걸려 원화 기준으로는 상승했으나, 달러 기준으로는 오히려 감소한 것이다. 지난해 연평균 원·달러 환율은 전년 1,144.4원에서 1,292.2원으로 147.8원(12.9%)이나 상승했다. 두 나라 모두 국민소득이 줄어든 것은 글로벌 달러 강세 현상에 따라 원화와 대만 달러화가 동반 약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만에 비해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Fundamental │ 기초체력)’이 약화한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경쟁력 약화에 있음을 방증(傍證)한다. 특히 낡은 규제와 경직된 노동시장이 투자를 막고 있는 탓이 크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이날 공개한 지난해 4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 분기 대비 0.4% 감소로 역성장했다. 연간 실질 GDP 성장률은 2.6%를 기록했다.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 수출 급감과 내수 기반이 되는 민간 소비 위축이 다시 한번 확인된 것이다. 올해 성장률은 한국은행 전망치 기준으로 1.6%에 그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0%에서 1.7%로 낮추고, 일본 성장률 전망치를 1.7%에서 1.8%로 올려 잡고 있어 일각에서는 한국 경제가 ‘잃어버린 30년’을 겪은 일본에 무려 25년 만에 역전(逆戰)을 당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도 못 미치는 저(低)성장의 늪에 빠진 것이 우리 경제가 처한 엄중한 현실이다. 이렇듯 우리 경제가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 │ 총체적 복합위기)’으로 치닫고 있는데도 여야 정치권은 전략산업 지원 입법을 외면하고 있다. 국가 전략산업의 세액공제율이 1%포인트 확대되면 대·중견기업은 8.4%, 중소기업은 4.2%씩의 설비투자가 늘어날 수 있다는 지난 2월 22일 자 대한상공회의소의 ‘투자세액공제의 기업투자 유인효과와 방안’ 보고서를 결단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경제 위기의 터널에서 벗어나려면 수출을 이끌고 견인하는 전략산업의 경쟁력 회복과 신성장 동력의 재점화가 무엇보다 화급(火急)하다. 현재도 우리와 격차를 벌리며 1위를 질주하고 있는 대만은 ‘산업혁신 조례 수정안’을 통과시켜 연구개발(R & D) 투자비의 25%, 설비투자의 5%를 세액공제 해주는 등 전략산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대만의 법인세 최고 세율은 20%로 한국의 최고 세율보다 4%포인트나 낮다. 지난해 기준 매출 10억 달러를 넘은 글로벌 반도체 기업이 대만은 28곳인 데 반해 한국은 고작 12곳으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반도체 산업 시설투자 세액공제 비율 상향 등 전략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법안들이 줄줄이 국회에서 발목이 잡힌 우리나라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더구나 반도체 지원을 빌미로 기업 영업기밀까지 공개하라며, 소재부터 장비까지 아우르는 반도체 생태계를 미국으로 흡수하겠다는 목표를 노골화한 「반도체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의 세부 지원 조건과의 일전을 앞둔 엄중한 상황이다.

글로벌 경제패권 전쟁에서 우리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부와 국회가 초격차 기술 확보와 인재 육성을 위한 예산·세제·금융 지원 등 전방위 대책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미국은 자국에 반도체 공장을 지으면 기업 규모와 상관없이 25% 세액공제를 해주고, 반도체 시설투자와 R & D 등에 520억 달러(약 64조 3,000억 원) 규모의 반도체 생산 지원금을 지급한다. 유럽연합(EU)도 2030년까지 전 세계 반도체 생산 점유율을 9%에서 20%로 두 배 이상 늘리겠다는 목표로 반도체 생산 확대를 위해 430억 유로(약 60조 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는 ‘유럽반도체법’에 합의했다. 일본도 도요타, 소프트뱅크, NEC, 덴소, 키옥시아, 소니, NTT, 미쓰비시UFJ은행 등 일본의 대표적 대기업 8곳이 첨단 반도체 국산화를 위해 연구·개발 거점 정비 비용 등으로 700억 엔(약 6,800억 원)의 정부 지원을 받아 첨단 반도체 회사 ‘라피더스’를 설립했다. ‘라피더스’는 세계에서 아직 생산기술이 확립되지 않은 2나노(㎚ │ 10억분의 1m) 공정의 반도체를 2027년까지 양산한다는 목표를 이미 세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미 2017년 3만 1,734달러였던 우리 국민소득은 5년이 지난 2022년에도 3만 2,661달러에 머무르며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멈춤은 현 위치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퇴보다. 왜냐면 경쟁국들의 질주가 광속으로 내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졸면 뒤처지고 잠들면 죽는 엄혹(嚴酷)한 국제 경제질서를 통찰하고 팽팽한 긴장감을 견지하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구두끈을 옭아매야 하는 이유다. 한국은행은 “원화 약세 때문”이라며 “4만 달러 목표 달성이 머지않아 가능하다.”라고 낙관했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이 목표로 삼은 2027년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진입은 한걸음이 더 멀어지게 됐다. 환율 요인이 작용한 건 맞지만 그와 무관하게 소득 정체와 성장률 추락이 구조화하는 현실도 직시해야 한다. 지금처럼 귀족노조의 독주와 힘자랑에 밀리고 강력 규제로 치달으며 혁신을 게을리 해선 ‘4만 달러 진입’은 요원(遼遠)할 뿐 아니라 ‘3만 달러 수렁’을 벗어나기 어렵기는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우리 사회·경제·교육·노동·기술 전반의 재부팅(Reset)과 레벨-업(Level-up) 없이 현실에 안주(安住)하고 고착(固着)한다면 쇠락(衰落)의 나락(奈落)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연합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