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축 장기화에 SVB 쇼크까지…“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대비해야”
고금리 취약 ‘신성장산업’, 자금조달 어려워질 것 한은, “금융권 리스크 확산할 가능성 크지 않아”
매일일보 = 홍석경 기자 |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여파로 국내 주식시장의 단기적 충격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10일 실리콘밸리은행, 뉴욕주 소재 시그니처은행이 파산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13일 시장은 예상보다 덤덤한 분위기 였다. 다만 SVB 파산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가파른 금리 인상에서 촉발된 만큼 국내 은행의 경우,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우려다. 이번 사태로 인해 정부의 긴축 기조에도 제동이 걸릴 지 주목된다. 결국 고금리에 따른 건전성 악화가 원인이었던 만큼, 통화정책 변화에 시장 관심이 집중된다.
◇단기 충격·변동성 확대 불가피
전문가들은 그러나 이번 사태로 인한 단기 충격과 변동성 확대는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며 당분간 긴장감을 갖고 사태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물가가 높아 금리를 올리자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고 금융기관이 부실해지면서 위기가 왔다”며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금리를 올려 가계와 기업이 고금리에 취약한지 테스트받고 있으며 신성장산업 쪽은 자금조달이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변동성 지수(VIX)는 지난 9일 3.50포인트 올라 작년 8월 이후로 가장 높은 일간 상승 폭을 기록했으며, 10일에도 2.19포인트 상승했다. 최재원 키움증권 연구원은 “아직 변동성 지수의 절대 수준 자체는 대표적인 위기 구간에 비해 낮은 수준이지만,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다가 급속한 상승세로 돌아 파산 사태 여파에 대한 경계감을 높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에선 주로 벤처기업이나 스타트업을 지원해온 실리콘밸리은행의 파산 여파로 국내 증시에서도 코스닥시장 위험이 코스피보다 커질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실리콘밸리은행의 주 고객이 테크, 바이오, 생명공학, 플랫폼 등 성장 기업들인데, 이들 기업은 특히 금리 인상기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김석환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이번 사태는 벤처기업이나 스타트업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지는 상황으로 연결돼 경기침체로 가는 길을 반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금리發 재무 악화 원인…뱅크런 우려
SVB가 파산한 배경은 미국 연준의 가파른 금리 인상이 원인이다. 고금리 충격에 따른 재무구조 악화가 고객의 대규모 예금 인출로 이어졌다. SVB는 그동안 늘어난 예금을 미 국채와 주택저당증권 등에 투자했는데, 갑자기 늘어난 고객의 예금 인출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보유 자산을 매각하면서 큰 손실을 입었다. 그동안의 금리 인상으로 채권 가격이 급락했기 때문이다.
SVB가 큰 손실을 입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는 다시 기술기업 등의 대규모 예금 인출을 불렀고(뱅크런), 미 금융당국은 SVB 폐쇄를 결정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은행에 대해 부실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는 상황이다.
다만 SVB와 자산 운용 형태가 다른 데다, 국내은행들의 전반적인 건전성 또한 양호한 것으로 평가되는 만큼 파장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국내은행의 경우 SVB와 달리 팬데믹 기간 늘어난 유동성을 유가증권 등 고위험 상품에 투자하기 보다는 주로 대출에 활용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예금은행의 수신(예금·작년 12월말 잔액 2243조5000억원)은 지난해 107조4000억원 늘었다.
같은 기간 은행을 포함한 전체 금융권 가계대출은 8조7000억원 감소했지만, 은행 기업대출(작년 12월 말 잔액 1170조3000억원)은 104조6000억원 불었다. 늘어난 수신 금액을 고스란히 대출에 활용하고, 유가증권 투자 비중이 크지 않다 보니 영향은 제한적이었다.
◇한은·금융위, “韓 금융시장 견고…우려 크지 않아”
한국은행은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가 금융권의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평가했다. 한은은 이날 오전 이승헌 부총재 주재로 ‘시장 상황 점검 회의’를 열고 미 SVB 사태 이후 국제금융시장 상황과 국내 금융·외환시장에 미칠 영향을 점검한 뒤 이같이 밝혔다. 이 부총재는 이날 회의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은행들의 건전성이 개선돼왔고, 미 재무부·연방준비제도(Fed·연준)·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예금자 전면 보호조치를 즉각적으로 시행했다”며 “현재로서는 SVB, 시그니처은행 폐쇄 등이 은행 등 금융권 전반의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SVB 폐쇄 사태와 관련해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금융시장 점검 회의를 주재하고 “우리나라는 과거 다양한 위기를 겪으면서 상황별 대응 장치가 잘 마련돼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오늘 아침 미국 재무부 등은 SVB 등의 예금 전액 보호조치를 발표하는 등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다”며 “아직은 이번 사태가 금융권 전반의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문가 시각이 우세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SVB의 붕괴가 결국 근본적으로 연준의 급격한 금리 인상의 결과인 만큼, 연준이나 한은 모두 향후 기준금리 추가 인상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직 국내 은행의 연체율이나 여러 건전성, 복원력 지표가 위험한 수준은 아니라는 게 한은의 분석이지만, 계속 금리 인상으로 압박하면 취약한 저축은행이나 카드사(여신전문금융회사) 등에서부터 유동성 부족이 나타나 은행 등 전체 금융기관을 흔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은 통화정책 방향의 윤곽은 다음 달 기준금리 결정 직전까지 물가와 연준의 인상 폭, SVB 사태 이후 금융안정 상황, 환율 등을 끝까지 지켜봐야 드러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