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SVB 파산에 긴축완화 기대감…4월 금통위도 금리동결론 고개
금융시스템 불안에 긴축 부담..."연준 빅스텝 못할 것" 한은도 추가 금리인상 압박 벗어나..."2연속 동결 유력"
2024-03-14 이광표 기자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긴축 장기전 의지를 드러냈던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이후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일각에선 연준의 눈치 살피기 바빴던 한국은행도 추가 금리인상 압박에서 한결 자유로워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3일(현지시간) SVB 파산 사태로 연준이 '인플레이션 잡기'와 '금융 시스템 안정'이라는 두 가지 목표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보도했다. 40년만의 인플레이션을 잡는 것이 당초 연준의 지상과제였지만, 연준의 또 다른 존재 이유 중 하나가 미국의 금융시스템 안정이라는 점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계 투자은행 소시에테제네랄의 미국 금리 분야 대표 수바드라 라자파는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선 금리를 올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라며 "다만 그럴 경우 금융 시스템의 약점이 노출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향후 연준이 기준금리를 결정할 때 지금껏 금리 인상으로 충격을 받은 다른 미국 은행의 현실까지 고려하지 않으면 추가적인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라자파 대표는 연준이 인플레이션 대처와 금융 시스템 안정이라는 두 가지 목표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기가 무척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긴축정책을 고수할 경우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증폭되는 모순적인 상황에 처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특히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SVB 등에 예금보험 한도를 넘는 예금도 전액 보증하고, 연준에 새로운 대출 프로그램을 도입한다고 발표한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올리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 같은 긴급 조치를 취한 것은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도모하기 위한 것인데, 기준금리 추가 인상은 스스로 발목을 잡는 결정이라는 해석도 있다. 지난 2021년까지 보스턴 연은 총재를 지낸 에릭 로젠그렌은 "미국 경제 시스템의 불안정성을 걱정하면서 금리를 올릴 필요가 있나"라고 반문했다. 이에 따라 시장에선 연준이 오는 21일부터 이틀간 열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융 시스템 안정이라는 목표에 더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확산하고 있다. 당초 시장은 연준이 이번 달 FOMC에서 '빅스텝'(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인상하는 것)을 밟을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했다. 그러나 SVB 파산 이후엔 0.25%포인트 금리 인상을 의미하는 '베이비 스텝'을 유지하면서 숨을 고를 것이라는 예상이 많아졌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금리(FFR) 선물 시장에서 연준이 이번 달 회의 때 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할 가능성은 이날 오전 8시30분 기준으로 89.3%에 달해 0.5%포인트 인상 확률 10.7%를 크게 앞섰다. 빅스텝 대신 베이비스텝에 나설 거란 시장의 전망이 확산되고 있는 셈이다. 골드만삭스는 한 걸음 더 나가 연준이 이번 달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긴축 기조는 유지하겠지만, 이번 달에는 일단 쉬어 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당초 연준이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할 것으로 예상했던 골드만삭스는 전망치를 변경한 이유에 대해 "향후 경제의 불확실성이 급증했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4월 11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의 금리동결 가능성도 덩달아 높아졌다. 한은에서는 3월 이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5%를 하회할 것이라며 인플레이션 둔화를 예상하고 있다. 국내 물가가 잡히는 데다 미국까지 금리인상 속도조절에 들어갈 경우 금리동결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연준이 금리를 0.25%p 인상해 한미 금리차가 벌어지는 게 부담이지만, 환율하락으로 한미 금리차에 따른 부작용도 덜게 된다. 백석현 신한은행 연구원은 "연준이 0.25%p를 올리거나 금리를 동결하고 외환시장까지 안정되면 한국은행도 동결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SVB 사태 안정 여부에 따라 열린 결론"이라고 말했다. 김유미 연구원도 "지금보다 금융 불안정성이 커지면 한은이 4월 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신속한 개입으로 당장은 시장 우려를 진화했지만 '불안한 진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외환시장 등 국내 시장에도 파급이 미칠 수 있고, 이에 따라 금통위의 결정도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백 연구원은 "이 사태가 진정됐다고 단정할 수 없다. 향후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